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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an 20. 2024

계획인간

주절거림

나는 계획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매일 온갖 계획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획들을 수정해 나가며 나의 미래를, 나의 인생을 새롭게 조정해 나간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계획들에 수정테이프를 찍찍 긋고는 그 위에다가 다시 새로운 계획들을 써 내려간다. 언제고 다시 수정테이프로 지워져 그 위에 또 다른 계획들이 적힐 수도 있는 그런 계획들을 말이다.


종종 아직 이루지 못한 계획들을 상상하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상상 속에는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룬 내가 있다. 그 달콤한 성취감 속에서 환희를 맛보며 행복에 겨워하는 내가 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내가 있다. 그것을 상상하면 잠시간은 이 어두운 현실에 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있다. 그렇게 조금은 살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상상 속의 나를 생각하면.  


내가 계획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 살기 위해서 ‘ 계획을 할 뿐이다. ’ 계획’이 없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머리가 아득해지며 숨이 막혀온다. ‘계획’이 없는 곳에서는 이 버겁고도 힘겨운 삶을 버텨낼 수가 없다. 차라리 많은 계획들 속에서 허우적 되며 이 외롭고도 차가운 현실들을 잊고만 싶다. 그곳으로 눈을 돌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결국 나는 ‘지금’을 살기 위해 계획들을 짠다.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말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닌, 어찌 됐든 살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이 계획들마저 없으면 정말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려 이상해질 것만 같아 ‘계획’이라는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온갖 계획 탓에 나의 머리는 언제나 지끈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버릇이 되었지만, 그래도 난 이 계획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내일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나의 이 산소호흡기인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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