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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pr 01. 2023

'척'하는 인간

주절거림들-과거 편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이 나이가 먹어서도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있는, 그러니깐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난 항상 친구들과 못 어울리거나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 느끼기에 무언가 그들 사이에서 겉도는 그런 느낌들을 받아왔던 것 같다. 그럼 난 그런 느낌들을 애써 지우기 위해 ‘적응을 한 척’, ‘활발한 척’, ‘괜찮은 척’의 ‘척’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 버릇 어디 못 간다고 난 아직도 그런 ‘척’들을 하고 있다. 이제는 오랫동안 ‘척’하는 삶을 살아온 탓에 본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더 이상 ‘척’ 하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좋아하려고 해도 그 전의 내가 어땠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척’하는 삶으로 인해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온갖 ‘척’들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 내 속은 텅 비어있는 빈껍데기인 것만 같아 억지로라도 몸에 '척'을 집어 넣는다. 계속해서 몸이 비지 않도록.


그중 내가 가장 잘하는 ‘척’은 ’ 괜찮은 척‘이다. 전혀 괜찮지가 않지만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괜찮은 척’을 한다. 당연히 남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나에게도 '괜찮은 척'을 하고, 남들에게도 ‘괜찮은 척’을 한다. 그럼 나는 정말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나는 나를 다독인 것이 맞는 것일까. 괜찮다고, 괜찮아져야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내 속은 썩어 문드러져 이제는 제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는데 겉으로만 다독인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나는 나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고 계속해서 외면한 것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게 무서워서, 썩어있는 내 속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마주 보면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까 봐.


지금까지 나는 그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정말 괜찮아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의 ‘괜찮은 척’을 했고, 그 예로 sns에 사진들을 자주 올렸다. 난 지금 행복하다고, 괜찮다고,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좋은 모습들만 sns에 올려 남들이 나를 진정 그렇게 봐주기를 원했고, 나 또한 그 사진들 속에서처럼 웃고 있는 내가 되길 바랐다. 처음에는 이 방법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정말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았고, 정말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때로는 정말 행복하다는 착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것도 나를 괜찮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강박 같은 것이 생겨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어딘가를 갈 때마다 그 순간순간을 무조건 sns에 남겨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그 순간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모든 것이 보여주기식이었다. 어느 순간 이 sns가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리곤 약속이 없는 날에도 혼자 나가 혼자인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마냥 행동을 했다. 또, 그것들을 사진으로 올림으로써 남들이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랐다. 그 결과 내 의도대로 내 주변의 몇 안 되는 나의 지인들은 나를 '주변에 개의치 않고 혼자서도 잘 즐기며 지내는 친구'로 인식을 했고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내면 깊숙한 곳에 있어 이제는 나와 한 몸인 것만도 같은 외로움과 공허함에서 도피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고, 의도였다는 것은 그들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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