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명적인 사랑

주절거림

by 구름

혼자 여행길에 오를 때면 어김없이 설레고 만다. 나에게도 어떠한 영화 같은 만남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내게도 어떠한 운명 같은 사랑이,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는 인연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이 질리지도 않고 들고야 만다. 꼭 왜 내게도 그런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기고 마는 것일까. 이것은 사랑영화의 폐허인 것일까. 여기서도 일어나지 않은 사랑이 꼭 외국에만 나가면 생길 것 같다. 그런 이상한 착각과 묘한 흥분감은 여행을 앞두고 나를 더 들뜨게 만든다. 어쩌면 여행의 설렘은 그러한 기대감과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생기고 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옆자리에서 시작된 만남, 길을 물어보다 시작된 인연, 목적지가 같은 곳으로 향하는 길에 시작된 사랑 같은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는 비디오 재생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생된다. 주인공이 나인 여러 로맨스 소설을 쓰며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오기를 아무도 모르게 바란다. 운명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찌르르 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난 운명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잔잔하고 평범하고 또 평범하게 흘러간다. 내가 그런 설렘을 안고 떠났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결국 여행의 마지막날까지 귓가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온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그런 사랑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에 혼자 ‘역시 그런 사랑은 영화겠지’라며 조금의 씁쓸함과 후련함을 느낀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을 잊고 살다 또다시 여행길에 오를 때면 나는 왠지 모를 그 막연하고 이상한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는 이번에는 다르겠지 하며 또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야 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