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언제나 나의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예민해진 청각은 귀신같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그 찰나의 소리를 포착한다. 오로지 둔탁한 빗소리만이 가득한 방 안에 있으면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먹구름이 그치고, 이상한 설렘과 반가움이 든다. 그 설렘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로지 비가 올 때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다.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심장이 쿵쾅하고 뛰기 시작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곧바로 문을 열고 무수한 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목이 꺾일 정도로 올려다본다. 빗물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그것을 무시하고는 꿋꿋하게 올려다본다. 그때의 나의 감정은 바로 행복. 행복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존재라 항상 입안에서 굴리다가 결국 내뱉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말을 꺼내도 되는 것인지, 과연 행복한 것이 맞는 것인지, 이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등의 의문과 확신이 생기지 않아 항상 주저하며 결국에는 그 말을 꿀꺽 삼켜버리게 된다. 하지만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비를 바라볼 때면 나는 행복의 감정을 느낀다. 우산을 쓰고는 물에 젖은 대지를 바라볼 때면 대지의 일부인 나에게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물을 머금어 파릇파릇하게 빛나는 대지들의 들뜸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도 대지의 기분에 동화된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한껏 진해진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나 또한 마음으로 비를 흡수한다.
또한 비는 어쩌면 해방감과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마지막 황제’에서 후궁인 ‘원슈’가 후궁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는 결국 문을 박차고 나오는데, 그때 때마침 비가 내린다. 하지만 ‘원슈‘는 비가 오는 것에 개의치 않고는 비를 맞으며 해방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뛰어간다. 비가 올 때면 항상 내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이 틀어지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노래가 자동재생된다. 마치 내가 ‘원슈’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 또한 이상한 해방감이 든다. 마치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만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것만 같고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그 ‘원슈’의 표정을 생각하면 나의 가슴 속을 채우던 갑갑한 것들이 한순간에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것에 그동안 참았던 숨을 깊게 내뱉는다. 단지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만으로 나는 여러 감정을 느낀다. 어디든 물은 존재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은 나에게 위로가 된다. 다행인 점은 내가 죽을 날까지 비는 내린다는 점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내 안의 행복이 메말라버리는 날은 없을 테니, 비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부디 자주 나에게 행복을 전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