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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pr 17. 2023

이름 콤플렉스

내가 살아가는 방식(2023/04/11의 기록)

벌써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간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의 이름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단지 흔하다는 흔하디 흔한 이유였지만, 문제는 그 흔한 이름이 너무나 흔한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항상 어디를 가나 내 이름은 존재했고, 성은 다르더라도 이름이 똑같은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어느 날은 내 이름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그 당시 인기가 많던 여자그룹멤버의 이름이라며 그룹 내에서 그 가수의 인기가 가장 많아 그걸로 지었다고 했다. 엄마의 대답은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대답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어떠한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에 대한 비하인드가 있을까 봐 내심 기대을 하며 엄마의 대답을 기다렸건만, 내 예상과는 동떨어진 그런 시시한 대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유치원 때부터 워낙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반에 한 명씩은 꼭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나와 성까지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문제가 일어났다. 나는 엄마아빠의 손을 붙잡고 각 반에 붙여진 종이들을 들여다보며 내 이름을 찾았다. 반을 찾던 중 3반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반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학부모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 아이 한 명과 선생님 한 분이 서 계셨다. 그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와 갑자기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더니 반이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분명 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나와 성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였던 것이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반이 뒤바뀐 채 서로 같은 이름을 달고서는 뒤바뀐 자리에 앉아있던 것이었다. 난 이 사건을 그때로부터 1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어린 시절 난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건 마치 도플갱어라도 본 듯한 충격이었다. 이제껏 많은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봐왔었지만 성까지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학교생활을 하는 십여 년 동안 항상 그 친구와 나를 구별하기 위해 내 이름 앞에는 00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예를 들어 내가 1반이면 ‘1반 00’, 그 친구가 3반이면 ‘3반 00’ 이런 식으로 우리는 불려졌다. 그리고 내가 키가 컸던지라 그것을 활용해 ‘키 큰 00‘이라고도 불려졌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항상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초중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던지라 거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름 앞에 다른 수식어가 달린 채 친구들의 입에서 불려졌다. 그것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나는 점점 더 내 이름이 싫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수식어가 달린 내 이름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항상 담백하게 이름만으로 불리고 싶었지만 내 이름을 그냥 이름으로만 말하면 “몇 반 누구?” 혹은 “어떤 ㅇㅇ이?”라는 말이 항상 나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수식어+이름’으로 불려졌다. 비슷한 예로 나는 드라마 ‘또 오해영’이 나왔을 당시 그것을 웃으면서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와 나의 다른 점이라면 그건 다행히 나와 그 친구는 누가 더 뛰어나거나 모자라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드라마와 같은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나도 그 친구가 나보다 잘난 친구였다면 아마도 ‘또 오해영’은 정말 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분명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이름 때문에 불편하거나 싫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이름이 같은 덕분인지 그 친구와는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난 이름 덕분에 항상 그 친구를 알고 있었고(그 친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어떠한 이름이 같은 것에서부터 오는 애로사항에 대한 동질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그 지긋지긋했던 학교에서 벗어나 드디어 졸업을 했을 당시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심지어 약간의 해방감마저도 들었다. 앞으로 나와 같은 이름을 마주할 일이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내심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세상에 나오니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더 많았고, 그걸로 인한 나의 스트레스, ‘이름 콤플렉스’는 사라지기는커녕 더욱더 심해져만 갔다. 그렇게 점점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개명에 대한 생각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더 이상은 이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사는 것에 견딜 수가 없어져 부모님께 개명을 선언했다. 직접 지어주신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단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바꾼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수식어가 없는 그저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 어딜 가서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여 주목받는 것도 싫었다. 무언가 지금 바꾸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계속 이름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채 살아갈 것만 같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다. 하지만 내가 정말 확고한 모습을 보이자 결국 허락을 하셨고, 나는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온라인 이름 작명소에서 이름을 받아 받은 이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서 일사천리로 개명 신청을 했다.


개명승인이 나는 것을 기다리던 나의 마음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전 기대감에 부푼 마음과도 같았다. 왠지 모를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도 달라질 것 같은,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고 길었던 5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새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 나는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이름이 달린 주민등록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주변지인과 가족들, 심지어 나까지도 새 이름이 어색해 입에서만 이름이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고, 나를 부른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떨 때는 예전이름이 갑자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거나 내 예전이름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이름에 적응을 하고 많이 듣다 보니 이제예전의 이름은 떠오르지도 않게 되었다.


지금 개명을 한 나의 만족도는 무려 200%이다. 아직 까지단 한 번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큰 만족감과 행복감을 준다. 어떤 사람은 “이게 뭐라고 행복감을 주기까지 해?”라는 말 을 할 수도 있겠지만, 20년 동안을 흔한 이름으로 고통받던 나는 이름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그런 감정이 드는 것 같다. 아마 그때 이름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나의 이 ‘이름 콤플렉스’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어쩌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나를 예전 이름으로 부르면 그것조차도 싫은 느낌이 든다. 나의 예전이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더 이상 예전이름을 듣고 싶지도, 입에 담고 싶지도 싫다. 단지 이름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과 행동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이름이란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이름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을 누구보다 크게 깨달아 이름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나의 이 소중하고 귀여운 새 이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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