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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May 13. 2023

엄마의 전화 한통으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2023/05/03의 기록)

어느 순간, 엄마의 전화가 내게 불편함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인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 때가 많았고, 나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엄마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엄마에게 나의 모든 생각과 일상을 공유할 필요는 없겠구나라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엄마에게 나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반응으로 말다툼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들이 점점 쌓이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면 싸움이 일어날 주제와 들으면 엄마가 신경 쓸 일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저 평범한,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엄마에게는 안심이 되리라. 또한 그것이 바로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잔잔한 삶. 그래서 별 일이 없는 한 엄마에게 점점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을 때 혹은 전화를 해야 될 때가 오면 무언가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중 내가 엄마와의 전화가 불편해진 가장 큰 이유는 통화내용에 항상 집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엄마가 나에게 집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썩 유쾌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뭐 여기에는 돈, 부모님과의 관계, 집안문제, 친구들, 학교 등등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는데, 이런 것들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을뿐더러 오히려 고향에서 벗어나 혼자 서울에 올라왔을 때 너무나 큰 해방감을 느꼈다. 부모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집을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너무나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20대 초반에는 일 년에 명절을 제외하고는 고향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에 있을 때면 집안에서 벌어지는, 고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모른 채 지낼 수 있어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외면한 채 지낼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엄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으로 나는 다시 서울에서 끄집어져 한 순간에 집으로 되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엄마가 전화를 걸 때마다 듣게 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 혹은 엄마의 스트레스 혹은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 돈과 관련된 문제들. 매번 이런 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 또한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 잊고 지내다가도 엄마의 전화 한 통에 잊고 지내던,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다시 마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엄마를 탓하고 싶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충분히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도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우리에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딸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하지만 나도 이곳에서의 나름의 힘듦과 스트레스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해 지쳐있다. 그래도 이것을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다. 엄마에게 괜한 걱정과 불안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 아무 일 없다는 듯, 괜찮은 척을 하며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언제나 통화를 할 때마다 듣게 되는 엄마의 불안하고 부정적인 이야기에 지금 내가 닥친 현실 + 집안의 일들까지 생각하게 되는 나는 온 머리와 가슴이 벅차기만 한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말로 푸는 성격이기에, 그 스트레스를 들어줘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이기에, 고스란히 엄마의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나는 어떨 때면 그 순간들이 너무나 벅차고 버거워 통화 중에 눈을 질끈 감고는 엄마의 말이 그만 멈추기를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과연 불효자인 것일까.


전화를 할 때면 엄마는 나에게 푸는 입장, 나는 엄마에게 위로하는 입장 이렇게 역할이 정해져 있다. 이 위치가 결코 변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엄마에게 나의 힘듦과 부정적인 이야기를 말할 수 없게 되고, 어떨 때는 나의 일상조차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된다. 그저 잔잔하고 평화로운 나의 삶만을 엄마가 안심할 수 있도록 들려줄 뿐. 엄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떨 때는 수신자에 떠 있는 ‘ 엄마’라는 두 글자만 봐도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있다. 당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저 그런 것들이 나는 가끔 벅차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도 엄마와의 마지막 전화통화가 꽤 오래전이라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전화통화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조금은 두려워진다. 항상 엄마와의 전화는 나에게 있어 ‘고민을 하다 결국 하게 되는 것(해야만 하는 것)’이다. 단숨에, 아무 생각 없이는 할 수가 없다.


 당신은 이런 나의 마음을 절대 모를 테고, 나 또한 엄마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표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나의 이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는 남기고 싶어 남몰래 이런 글을 써본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며 서운하다는 말을 종종 내뱉으신다. 그럴 때면 난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며 그깟 내 감정이 뭐 대수라고 앞으로는 엄마에게 전화통화를 자주 하자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런 다짐도 그때뿐, 또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 지친 나는 연락을 줄이게 되고, 결국 나의 고민과 엄마의 서운함은 늘어만 간다. 나는 결국 불효자이다. 엄마와의 전화 한 통으로 받는 나의 피곤함과 괴로움이 싫어 피하고만 싶어 하는 이 이기적인 딸.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이해 못 하는 이런 내가 싫다. 그렇게 오늘도 난 엄마에게 걸 전화로 고민을 하다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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