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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환 Oct 22. 2023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

그리니치 표준시(GMT)

손목 시계의 기능에 대고 쓸모를 논하며 비웃는 경우는 허다하다. 누적 시간을 측정하는 크로노그래프는 그나마 대중적인 기능. 소리를 울려 시분초를 알려주는 ‘미닛리피터’나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차를 줄여주는 ‘투르비용’에선 조소의 깊이가 짙어진다. 현대인에게 그다지 필요한 기능은 아니지만 수천만 원은 고사하고, 수억 원까지도 호가하기 때문. 염세적인 마인드가 씁쓸해 눈쌀을 찌푸리다가도 21세기 현대인이라는 자화상을 인지하고선 한숨을 내쉬어 쓴 맛을 뱉어버리곤 한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를 외치는 건 나름의 가치가 있다. ‘굳이’라는 단어로 무안함을 안기기보단 클래식에 주목해보는 게 지성 발현의 한 면이기 때문.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통일된 시간 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결과물이 케케묵은 산물이 아니란 것을, 그 과정에서 탄생한 손목시계의 기능 GMT를 이해하면 비웃는 행태가 좀 줄어들 수 있을까.

사진 속 시계는 롤렉스의 자회사 튜더Tudor의 블랙베이GMT. 두 색으로 구분된 베젤과 시분초 핸즈 외 하나의 핸드에 주목. GMT 기능은 표준 시간대를 가로질러 비행하는 파일럿을 위해 고안된 기능이다. 출발지의 시간과 도착지의 시간을 동시에 표시한다. 분은 동일하고 시간만 바뀌는 방식. 넓은 세상을 무대로 활동하는 모험가들을 위한 시계다. 두 개 이상의 시간대를 파악해야 하는 코즈모폴리턴을 위한 기능인 ‘월드타이머’는 다음 차원의 이야기. 그 근간이 되는 게 GMT다.

GMT 기능을 탑재한 시계는 툴워치다. 튜더와 롤렉스의 정체성 역시 툴워치. 프리미엄이 붙어 금통 시계만큼 귀한 몸이 되어버린 GMT-MASTER II 말고 블랙베이GMT에 집중. 가격만 바라보지 말고, 주장해온 신념을 고수하는 모습에 박수칠 줄 아는 것도 지성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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