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따 사회초년생의 2년 버티기 한 판

은따 사회 초년생, 외국계 PM이 되기까지

by 또치호랭
버티기 한 판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생존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심지어 육아까지 하면서....!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 다른 사람들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적어본다.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


전혀 관심 없는 경기도권 공대를 3.14 원주율의 점수로 졸업한 나는 6개월의 국비지원 교육으로 ‘웹 개발’을 배워 취업 준비한 지 2년 만에 가까스로 유명하지만 크지는 않은 회사에 입사했다.

겨우 입사한 회사였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과 긴장,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던 첫 회사는 지옥 같았다.


은따 사회초년생


매일 교육을 명목으로 저녁 6시에 미팅을 잡아 내가 한 개발 코드를 하나하나 이유를 설명하라는 팀장님과 나만 빼고 만들어진 단톡방 이야기를 같이 점심 먹는 자리에서 즐겁게 하는 여자 직원들…


내가 말을 꺼내면 싸-해지는 분위기에 투명 인간을 자초하고 화장실에서 혼자 울던 나날들이었다.

나중에 그 점심 멤버 중 한 분은 퇴사하면서 그동안 냉대해서 미안했다고 자기가 나를 오해했다며 사과를 했지만 상처받은 내 마음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렸다.


차가운 직속 상사, 무너져가는 정신


그런 와중에 팀에 새롭게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나의 직속 상사는 너무나 차갑고 무서웠다. 이미 5명의 부하 직원을 내보낸 사람 밑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주눅 들어 지내던 나날들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본인 실수로 혼나던 나를 외면하는 그분에게 더는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시절의 나는 다음날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아서 새벽 3시에 잠들고 출근을 위해 6시에 일어났는데 어느 날 차에 치이면 회사에 안 가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빨간 불에 나도 모르게 건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살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살고 싶어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던 사람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나는 2년의 웹 개발 경력은 얻었지만 자존감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지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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