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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청년이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를 헤매던 날

by 전지훈

“그래서 대체 집이 어디야?” 작년 6월, 서울시 화곡동을 떠난 동생이 새로 보금자리를 튼 인천 검단의 신축 아파트를 찾아 동네를 두 시간 동안 헤매고 헤매다가 도저히 집을 찾을 수 없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내지른 첫 마디였다. 자가를 이용했다면 내비게이션으로 위치를 손쉽게 찾아 지하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갈 전용 출입구를 찾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뚜벅이였던 나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도착한 생판 처음 보는 동네에서 작열하는 아스팔트 위를 꼼짝없이 활보하며 엇비슷한 아파트 단지 사이를 수 시간 동안 누벼야 했다. 실제로 공산권 국가들의 성냥갑 같은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아파트들은 모두 닮아 있지 않은가. 요새 주부들이 자주 내뱉는,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게 하려고’ 아파트 건물을 짓는다던 우스갯소리가 거짓말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쯤이었다.


간신히 아파트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내 상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초여름 불볕더위로 얼굴에 펴 발랐던 선크림 절반은 땀범벅이 된 얼굴 아래로 허연 물자국을 남기면서 흘러내렸고, 말끔히 차려입었던 옷의 가슴팍과 등줄기, 겨드랑이 부분은 흥건한 땀자국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동생 집 안에 들어섰을 땐, 이삿짐이 가득한 박스들이 늘어선 먼지투성이 거실 바닥에 두 시간을 내리 드러누워야만 했다. 내가 쓰러지자 손이 달려 나를 호출했을 터였던 동생은 짐 정리에 더해 더위를 먹은 나까지 보살피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그날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지난달 어머니의 묵직한 반찬통 보따리를 배달하기 전까지 반년이 넘게 동생 집에 가지 않았다.


동생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이라는 오해는 접어 두시라. 오히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씩 본가에서 만날 때마다 살뜰히 용돈과 덕담을 주고받는 의좋은 남매다. 나는 동생보다는 동생의 집을 싫어했다. 천편일률적인 건축 양식과 영어와 불어, 때로는 독일어까지 섞은 긴 영어식 단지 이름에서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기괴한 건축은 근대 건축 대결에서 르코르뷔지에가 가우디를 이긴 결과로 탄생했다. 석재와 같은 천연자원을 활용해 어울림을 추구하던 가우디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을 빠르게 재건하는 과정에 ‘효율성’을 추구하던 르코르뷔지에의 아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철근과 콘크리트는 전쟁의 포성이 전통과 역사를 휩쓴 자리를 빠르게 메워갔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추구했던 한국도 이런 우수한 건축 양식을 못 본 체하며 넘어갈 리 없었다. 그 결과는?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다. 그런데도 효율적으로 지어져 사람을 몰아내는 아파트를 싫어한다. 아파트에 익숙한 신세대가 이럴진대,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서 살다 아파트로 내몰린 고령 세대는 오죽할까. 며칠 전 고령화 문제를 다룬 신문 기사 인터뷰에는 “나는 요양원에 들어가기 싫다. 실버타운도 싫다. 나는 내가 사는 집에서 죽고 싶다.”라고 말한 할머니의 말이 실렸다. 효율성을 앞세운 근대는 사람 사이가 끈끈하게 이어져 있던 전통 사회를 죽였다. 기사를 읽고 신문을 내려놓은 그 날, 늙어서도 이어진 채 그동안 살아오던 삶의 터전만큼은 지키고 싶다던 할머니가 단호하면서도 절박하게 내뱉은 호소가 유달리 가슴 깊이 울렸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에서 아파트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려다 아차 싶어 한 줄을 더 써넣는다. 로제의 아파트가 빌보드를 휩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파트'에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이 이 글을 읽었다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당신의 자부심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쓰이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다면 그마저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변명 같겠지만, 이마저도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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