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를 만나러 긴자에 다녀왔다. 이번 주말이 아니면 내년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제 저녁에 급하게 잡은 약속이었다. 예전에 도쿄에 살 때는 명품 거리로 유명한 긴자는 갈 일이 아예 없었는데 도쿄 외곽으로 이사를 오다 보니 누군가와 만나려면 도쿄역이나 긴자역에서 만나게 된다. 지난 번엔 사람이 이렇게 많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 오후에는 꽤나 붐볐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온 건지 쇼핑백을 손에 든 사람들이 많았고 내 자신이 이미 연말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그 사람들마저 한결같이 들떠 보였다.
겨울이 더 깊어오면 도시 이곳 저곳의 가로수들은 반짝이는 불빛을 입는다. 가로수 너머로 도쿄 타워가 바로 보이는 롯폰기 힐즈의 차갑게 얼어버릴 듯 빛나는 일루미네이션도 있고 따뜻한 금빛으로 감싸이는 듯한 긴자의 일루미네이션도 있다. 도쿄에서는 이렇게 번화가를 중심으로 연말 분위기를 준비한다면 미국에는 캔디 케인 레인이라는 것이 있다. 캔디 케인 레인은 여러 집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진 거주 지역을 말하는데 로스앤젤레스에 살 때는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캔디 케인 레인을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었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테마가 있기도 하거니와 장식의 규모와 양이 상당해서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보관하고 꺼내고 손질하나 하는 아주 현실적인 걱정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불빛은 어딘지 모르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어디선가 꺼내온 플라스틱으로 된 빨간 양말 모양의 과자통에도 꼬마 전구가 가득 달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속에 든 과자는 제쳐두고 반짝이는 전구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등 뒤로 아이들을 들여다보던 젊은 엄마와 그녀가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주던 그 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과 함께 길고 느린 밤도 찾아오지만 그게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다. 그 길고 느린 밤이 지날 동안 같이 있어줄 반짝이는 불빛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불빛 속을 걸으며 내 마음도 따뜻한 기억들로 차오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