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 잘 두고 마시는 진은 오이나 자몽 같은 가니쉬와 곁들이면 시원한 청량함이 기분 좋다. 겨울철에는 묵직하고 따뜻한 느낌을 지닌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진다. 비싼 위스키는 모르더라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산토리 위스키는 겨울에 특히 더 생각나는 친구같은 느낌이다. 산토리 카쿠를 처음 마신 건 대학생 때였다. 소주나 맥주만 알던 대학교 일 학년 때는 맥주는 배나 부르고 소주는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도 비슷한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생일 때는 개강파티나 종강파티 같은 술자리에서 말술을 들이키는 게 문화였다. 늘상 소주나 맥주 아니면 소맥을 마시던 내게 위스키로 만든 하이볼을 알려준 건 친구였다.
처음 하이볼을 마셨을 때의 충격이란. 알맞은 정도의 씁쓸함과 넘길 때 코로 뿜어져 나오는 오크향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많이 마시지 않아도 금방 알딸딸 해지는 건 덤이었다. 그 뒤로 나는 줄곧 산토리의 카쿠를 마셨고 추운 겨울이면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났다. 아주 추워 온 몸이 꽁꽁 얼 것 같던 날 디즈니랜드에 간 적이 있다. 덜덜 떨면서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추위를 대비해 집에서 담아갔던 위스키를 입에 털어넣었다. 위스키가 목을 뜨겁게 타고 내려가면 얼마간은 몸도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동북 사람들이 독주를 즐기듯 추운 곳에는 위스키가 함께 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 오늘은 점심 때부터 위스키 생각이 났다. 오늘의 날씨를 검색 했을 땐 꽤 포근할 것 같았는데 일본 집에서 나는 겨울은 왜 이렇게 밖보다 집 안이 더 추운 것 같은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거실 소파에 줄곧 앉아 있었다. 완벽하게 남향을 보고 난 거실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라 앉아 있으면 등이 따뜻해지는, 우리 집에서 최고로 따뜻한 곳이다. 점심 시간 즈음되어 슬그머니 일어나 미리 사두었던 위스키를 가져온다. 위스키를 한 잔 따르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크림치즈 한 조각을 꺼내 홀짝홀짝 마신다. 겨울만 되면 위스키와 함께 나에게 하이볼을 알려준 친구가 생각 난다. 따뜻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위스키가 느껴진다. 몸도 따뜻해지고 기분도 말랑 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