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시카고에 사는 루시, 아무렇게나 머리를 틀어 올리고 제 몸보다 훨씬 큰 코트를 걸친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나는 서양 여배우 중에는 산드라 불록을 제일 좋아한다. 그녀의 깊은 눈과 각진 턱 그리고 낮은 목소리에서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코미디 영화에서 몸 사리지 않고 웃기다가 진지한 영화에서는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그야말로 다양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 때면 벌써 30년이나 된 그녀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가 보고 싶어진다. 미국 동부의 도시 시카고에서 전철역의 토큰 판매원으로 일 하는 루시는 매일 비슷한 시각에 전철을 타는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가족이 없는 그녀는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전철을 타러 온 남자가 선로에 떨어지게 된다. 그녀는 선로에 떨어진 남자를 구하고 얼떨결에 자신이 그 남자의 약혼자라고 병원 직원들과 그 남자의 가족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버린다. 그렇게 코마에 빠진 남자가 잠을 자는 동안 외로웠던 루시의 삶에 따뜻한 체온이 하나 둘 더해진다.
영화는 줄곧 꽁꽁 얼어버릴 것처럼 추운 시카고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뭔가 김 서린듯 뿌연 화면을 보고 있자면 내 입에서도 김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라 덮고 있던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순수한 루시의 모습에 빠져든다. 그 추운 날씨에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사먹는 루시,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고양이와 밥을 먹는 루시, 아빠가 남기고 가신 큰 코트를 걸치고 잭과 나란히 걷는 루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어 어색하지만 마음까지 데워진 것 같은 루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은 루시.
피터가 물은 적이 있어요. 언제 잭과 사랑에 빠졌냐구요. 저는 말했죠.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나는 루시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녀의 것과 비슷한 엄청 큰 오버사이즈의 겨울 코트를 사서 입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코트는 아니지만 그 코트를 입고 다닐 때면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한 루시가 떠올랐다. 산드라 불록의 젊은 시절과 시카고의 추운 겨울 풍경과 가족이 함께 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모두 묶어 즐길 수 있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는 올 겨울도 포근한 담요처럼 언제든 끌어다 따뜻하게 덮고 싶은, 매년 겨울철만 되면 생각 나는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