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뜨거 뜨거. 흐으으으. 46도로 맞춰둔 목욕물에 들어가 욕조 바닥을 딛고 선다. 차가웠던 발끝에서 부터 찌릿찌릿한, 어릴 때 자주 먹었던 입안에서 파바박 터지던 자잘한 알갱이 사탕을 먹을 때의 느낌이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그러고는 푹 몸을 담근다. 30초에서 1분 정도면 물 온도에 적응이 되어 몸은 금새 나른해 진다. 예전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건 때를 밀기 위해서 라고만 생각했다. 엄마나 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던 어린 시절에도 그랬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주말에 혼자 목욕탕을 다니던 때에도 그랬다. '우와 이제 목욕탕도 혼자 가는 어른이다' 라고 생각하던 나에겐 뜨거운 탕에서 몸을 불리고 시원하게 때를 미는 게 주말 루틴이었다.
겨울철 한정이긴 하지만, 이제는 뜨거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매일의 루틴이다. 목표는 때 밀기가 아니라 몸을 구석구석 덥히기. 물론 2주나 3주에 한 번씩 때를 밀 때가 되면 밀긴 하는데 평상시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비누칠만 한다. 바닥 난방이 없는 미국과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추위를 잘 타고 손발이 항상 차갑기 때문에 목욕을 해서 하루동안 추위에 오그라들었던 몸도 풀고, 혈액순환도 시키고, 덤으로 따뜻하게 잘 준비까지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겨울철에 생활하는 방식을 나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입욕제를 볼 수 있는데 최근 2년째 내가 쓰는 건 코스트코에서 주문한 알칼리성 온천 성분이 들어있다는 온소 라는 제품이다. 유백색도 있고 감색도 있고 무색도 있는 만큼 색도 다양하고 향도 다양하다. 질릴 때쯤 번갈아가면서 쓰기 좋게 끔 세 가지 정도를 두고 쓴다.
나의 목욕 루틴은 이렇다. 우선 머리를 감고 헤어팩을 바른 후에 수건으로 돌돌 머리를 말아준다. 뜨끈한 목욕물에 푹 잠겨서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앱으로 책을 읽거나 유튜브 또는 넷플릭스를 본다. 몸이 점점 덥혀지고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느끼면서 느긋하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다. 따뜻한 물에서 몸도 풀고 덤으로 마음도 푸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사와키 코타로의 「당신이 있는 장소」 라는 단편집에 「크리스마스 선물」 이라는 단편이 있다. 형무소에서 복역 중인 아들에게 소포를 보내려던 아버지가 곧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포 속에 아들이 어릴 적 읽던 크리스마스 그림책을 함께 넣어 보내는 이야기이다. 어린 아들이 좋아하던 그림책 에는 아마도 추위를 타서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산타가 나온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다 나눠주고 나서 집에 돌아온 산타는 따끈한 목욕물에 들어가 '목욕보다 좋은 건 없지' 라고 중얼거린다. 추운 날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뜨끈한 물 속에 들어앉으면, 크리스마스 한정 작업을 마무리 하고 집에 와서 목욕으로 몸을 푸는 산타를 향해 끝없는 공감을 보내게 된다.
나도 오늘은 뜨거운 물에 몸이 붕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려 본다. '겨울철 목욕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