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진 날씨를 느끼며 두꺼운 이불을 꺼낼 때가 되면, 옷장 깊숙이 넣어 놓았던 로브도 함께 꺼낸다. 한국에서는 어딜가나 바닥 난방이라 난방만 켜 놓으면 금새 공기도 훈훈해지곤 했었다. 반면에 일본은 겨울 추위가 덜 함에도 불구하고 실내에서 저체온증으로 돌아가시는 분들 소식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집들이 겨울 날씨에 취약하다. 주에 따라 기후가 천차만별인 미국에서 내가 살았던 서해안 지역은 비교적 날씨가 온화해서 그런지 히터가 없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온돌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온돌 문화가 없는 미국과 일본에서 나는 겨울철엔 온종일 로브를 입고 생활한다.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혀놓았던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로브를 걸치고 허리끈을 동여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침실을 나서는 순간 추운 공기가 훅 코 끝에서 느껴진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소매가 길고 따뜻한 잠옷에 로브를 겹쳐 입어야 비로소 이불 동굴에서 나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가디건도 입어보고 스웨터도 입어보고 모두들 하나쯤은 갖고 있을 법한 플리스 자켓도 입어보았지만, 입고 벗기 편하고 엉덩이까지 착 덮어주는 건 로브 밖에 없었다.
요즘 자주 입는 로브는 면으로 된 와플 수건 소재의 로브인데, 면이라 피부에 닿았을 때의 자연스러운 촉감도 좋고, 손 씻고 난 후에 세면대에 수건이 없을 땐 스윽 손을 닦을 수도 있다. 다른 로브들은 너무 두꺼워서 세탁할 때 이불 만큼 자리를 차지해서 세탁 횟수를 많이 늘렸는데, 이 로브는 수건 빨듯이 빨면 되니 세탁도 간편하고 경제적이다. 또 설거지를 할 때는 허리끈을 묶고 소파에서 편히 쉴때는 풀었다 하면서 상황에 맞게 허리끈을 풀었다 묶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참 좋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 하얀색 로브를 입은 줄리아 로버츠가 리처드 기어와 룸서비스로 시킨 조식을 먹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머리는 뿌리에서 부터 꼬불거리는 곱슬머리다. 그리고 여기 히피머리를 하고 로브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있다. 얼굴은 물론 다르고. 줄리아 로버츠처럼 조식으로 나도 뭘 좀 시켜먹어야 하나 싶다. 몸에 착 감기는 애착 로브를 입고 목이 긴 스웨터 양말을 신고,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손에 드니 비로소 겨울철 주말의 오전이 시작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