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꺼내고

by 혜안

매년 11월 초가 되면 하는 일이 있다. 그 해 초에 잘 정리해 넣어둔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들을 꺼내어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다. 보통 미국 가정에서는 11월 말의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하는데 우리 집은 11월 초만 되어도 연말 분위기에 젖어든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겨울 준비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래도 양심상 핼러윈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식이다.


올해도 11월 첫째 주말에 어김없이 벽장에서 긴 봄, 여름과 가을을 보낸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겨울을 맞으러 벽장 밖으로 나왔다. 상자를 하나 둘 열어보니 몇 년 간 써온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반갑고 기특하게 잘 들어있었다. 우선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움츠려 있던 가지들을 펼치고 그 끝에 반짝이는 방울을 달기 시작한다. 오너먼트의 대부분은 이케아에서 조금씩 산 것들인데 개중에는 몇 년 전 시동생에게 받은 수제 오너먼트도 있고, 결혼 전에 놀러 갔던 가마쿠라에서 산 우리의 이름을 새긴 작은 거북이 모양 나무장식 등 우리 집만의 오리지널 오너먼트도 있다. 장식이 끝나고 나면 꼭대기에 별을 얹고 꼬마전구를 둘러서 마무리하고, 트리 점등식을 한다. 올해의 겨울이 이렇게 시작된다는 나만의 의식이다.


우리 집 트리. 아직 아래가 많이 허전하다. 앞으로 두 달간 선물을 차곡차곡 놓아두어야지.


아직은 늦은 가을인 감이 없진 않지만 겨울을 사랑하는 나는 좀 더 일찍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가끔 농담조로 Best time of the year 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진심으로 일 년 중에 가장 기대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추운 겨울에 가족들과 모여 앉은 그 분위기, 긴 연휴기간 동안 마음껏 책도 읽고 겨울을 즐길 수 있는 그 분위기가, 한 해의 가장 큰 축제가 아닐까 싶다.


지난 주에는 이케아에서 올해 새롭게 추가할 귀여운 버섯 오너먼트를 사왔다. 장류진 작가님의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으면서 핀란드 사람들의 숲사랑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크고 작은 버섯 인형들을 보자 숲속에서 버섯을 따는 순수한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마다 조금씩 장식들이 늘어가는 것도 큰 기쁨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가 끝나면 평소 쓰던 베이지색 테이블보도 빨간색과 초록색이 들어간 체크무늬 테이블보로 바뀌고, 선반이나 현관에 달거나 얹는 유리 장식들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한병철 작가님의 「리추얼의 종말」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삶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사물에 해당한다. ・・・ 사물들은 삶을 안정화하는 고정된 말뚝들이다. 리추얼도 똑같은 기능을 한다. 리추얼의 같음을 통하여, 반복을 통하여, 리추얼은 삶을 지속적이게(멈춤 가능하게) 만든다. ・・・ 거주하기는 지속하는 사물들을 전제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고 연말을 준비하는 것은 나의 리추얼이다. 나의 시간이 그냥 흘러가게만 두지 않고 멈출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에게 축제의 시간에 "거주함" 을 선물하는 리추얼이다.



집안을 둘러보니 분위기가 많이 따뜻해진 것 같다. 나는 이제 겨울의 축제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겨울의 축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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