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햇살 Oct 29. 2022

캐나다인을 닮은 캐나다 의료

오랜 기다림 뒤, 황송한 결말

 

얼마 전 캐나다의 한 리서치에서 '캐나다인들은 국가의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는가'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들은 복합 문화, 하키, 캐나다 군, 이중언어, 의료 시스템, 원주민 문화, 캐나다의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항목에서 10년 이상 캐나다에 산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의료 시스템'은 정말 예상 밖의 답이었다.




의료 시스템 부문은 감히 세계 1위 수준(뇌피셜)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라났기 때문일까? 캐나다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10분만 걸어 나가도 첨단 장비를 갖춘 개인 병원이 즐비하고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빠르고 상세하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게다가 매달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긴 하지만 진료비가 저렴하고 정부 지원도 많은 편이다.


반면, 캐나다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말하자면 참 할 말이 많아진다. 캐나다에서 몇 번 병원에 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웬만하면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의사를 만나 실질적인 치료를 받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로는 표현이 안된다. '너~~~무' 오래이다.


어딘가 아프면 바로 해당 개인병원이나 종합병원의 해당 과를 찾아가면 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서는 내가 미리 등록해 둔 주치의(family doctor)나 health card를 가진 누구나를 언제나 받아주는 walk-in 병원을 먼저 찾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며칠 동안 머리가 아프다면 나는 주치의 사무실에 전화해 예약을 하거나 가까운 walk-in 병원을 찾아간다. 주치의는 보통 며칠 이내에 예약이 잡히고, 주치의든  walk-in 클리닉이든 의사를 만나기까지 보통 대기실에서 1-3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내 의사를 만나 심각하지 않은 증상으로 판단되면 보통 'You'll be okay.'처방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 지거나, 열이 오랫동안 높을 경우엔 항생제나 진통제를 처방해 준다.


만약 의사가 생각하기에 정밀검사(X-ray, 피검사, 초음파 등)가 필요하다거나 전문의의 세심한 진찰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의 clinic이나 검사받는 lab에 갈 수 있도록 referral이라는 것을 발행해 준다. 그러면 그 referral을 가지고 clinic이나 lab에 예약을 하고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데 전문의를 만나기까지는 보통 3개월-1년, lab은 몇 주의 시간을 기다린다.

lab에 가서  X-ray라도 찍게 되면 그 검사 결과는 다시 몇 주 후 주치의에게 보내지고, 나는 다시 그 주치의와 며칠 내에 예약을 잡고 가서 몇 시간을 기다려 검사 결과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다 듣도록, 전문의와는 아직 예약도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머리 아픈 증상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나를 괴롭히다가 이미 사라지고, 답답해서 속병이 생길 것 같아진다. 그러니 웬만하면 나을 때까지 참는 캐나다식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캐나다 의료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열악한 의료 장비에 있다. 한국의 동네 개인 병원만 가도 종종 보이는 값비싼 최첨단 장비는 캐나다에서는 종합병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장비일 뿐, 웬만한 개인병원에서는 체중계와 혈압계, 줄자나 주사기 정도를 볼 수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갈 수 있는 전문의 병원은 그래도 설비를 갖춘 편이지만, 최신식 장비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10년 전 아이를 임신하고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3개월에 한 번 정도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선생님은 옷 맞출 때 쓰는 줄자를 꺼내서 내 배 사이즈를 재고 공책에 숫자를 적어 계산한 후 아이의 크기를 알려 주셨다. 임신 기간 동안 내 자궁에선 아이뿐 아니라 2개의 근종도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랐는데 출산 이틀 전 근종의 크기가 직경 21cm, 17cm였다. 그때도 의사 선생님은 불안해하는 내게 'You'll be okay.'처방을 내려 주셨다.




캐나다는 살아갈수록 참 신기한 나라다.  나는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2번의 수술을 경험했다. 생각만 해도 지칠 정도로 오랜 기다림과 어이없도록 자연주의인 처방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하지만 막상 종합병원으로 보내져 수술 등의 심각한 의료 조치를 받을 때면, 나는 항상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담당의와 마취의 이외에도 다섯 명 이상의 의사가 들어와서 내가 마취로 의식을 잃기 전까지 추운 수술실에서 곧 수술을 받을 헐벗은 몸에 담요를 덮어주고 말을 걸고, 농담을 하고 격려해 주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받은 두 번의 수술은 꽤나 힘든 수술이었으며 웬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의사들은 잘 시도하지 않는 수술이었다고 한다. 이건 나중에 한국을 방문해 검진을 받았을 때 한국의 의사 선생님들께 들었다. 하지만, 매우 어려운 수술을 뛰어난 실력으로 진행했던 내 두 분의 캐나다 전문의 선생님은 수술에 대해 걱정하는 내게 그저 "No worries. You'll be okay."라고 말해줬을 뿐이다.


수술 후 2박 3일 간 입원했던 종합 병원의 병실은 2번 모두 개인 화장실과 개인 TV가 갖춰진 1인실이었다. 다인실에 입원할 경우 수술도 입원도, 그리고 약값도 모두 무료이지만, 내 편의를 걱정하는 남편이 병실을 1인실로 업그레이드해주었고 퇴원할 때 내가 지불한 총비용은, 수술비를 포함해 약 60-70불(한화 약 6-7만 원) 남짓이었다.




한국인 시선에서 너무 느리고 답답한 과정이지만 수술과 입원 환경은 뛰어난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어찌 말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전하는 캐나다의 의료에 대한 이야기들은 운 좋게도 우연히 시설이 좋은 병원에 근무하는, 뛰어나게 실력이 좋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와 스태프를 만나서 가능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묻는 다면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일 처리가 더디고 속 마음을 터놓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캐나다 사람을 꼭 닮은 모습'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