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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Oct 29. 2022

캐나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 그리움과 희망


어린 시절 내가 그리던 나의 미래에 내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 평생을 외국에서 살아가게 되는 장면은 없었다. 국내든 국외든 유난히 여행을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가 너무 좋았고 미운 모습마저도 사랑했기에 평생을 떠나서 살아갈 이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이유는 살아가면서 생겨났다. 떠날 이유가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서였다. 11년 전 젊었던 남편과 나의, 용감하고도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된 캐나다 살이는 우리가 계획에 없이 아빠, 엄마가 되면서 진지한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우리 셋은 이곳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해외 동포이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유난히 그리운 가족이나 친구가 떠올라도 전화해서 곧 만나자는 약속을 할 수 없는 것. 그리워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없는 게 너무 당연해 그리움은 그리움인 채로 안고 살아가는 그런 것이다.


얼마 전 나처럼 이민자인 회사 동료 P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P에게 말했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건 평생 마음속에 그리움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것,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일인 것 같아. 가족과 함께 하는 일들을 새로운 사람들과 한 해 한 해 함께 해 나가면서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거지. 예를 들면 명절에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고, 휴가를 함께 보내고 아이를 함께 도와가며 키우고 하는 것들 말이야.'


반면, P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기르는 것, 그게 이민 생활인 것 같아. 지금 당장은 조금 여유를 부리며 살아도 될 것 같지만, 갑자기 내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어야 할 때를 떠올려 보면 당장 내 가족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거든, 그래서 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며 뭐든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해. 앞마당의 잔디를 깎고 무거운 가구를 옮기고 세금신고를 처리하고 하는 일들... 그게 뭐든 말이야.'


하기야 이 지구별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당연히 내 편이 되어줄 거라 믿을 수 있는 가족과 친구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것. 그래서 또 다른 가족을 함께 만들어 가든, 혼자 남아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부단히 애를 쓰든 이민자의 삶은 늘 그렇게 그리움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 속에서 한편으로는 자유를 느낀다. 나의 과거와 내가 지켜온 가치, 내가 누구인지를 공유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뜻밖에도, 사막에 혼자 툭 떨어진 것만 같은 외로움만큼이나 커다란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 나는 이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 과거의 나와 내 부모님과 사회가 합심해 키워낸 나 말고, 오직 본연의 나, 내가 되고 싶은 나, 그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같은 것이 반짝이는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는 나이를 묻지 않는 사회이다. 어딜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구직 면접을 봐도 나이를 묻는 일은 좀처럼 마주하기 힘들다. 동네 아이들도 내 이름을 부르고 인사하며, 얼마 전 70살이 된 내 친구 Kathy를 나도 그저 그녀의 이름으로 부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 나이가 몇 살인지도 상관 안 하는 곳, 내가 받은 교육과 과거에 내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배경도 소용없고, 지연도 학연도 없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원래 이 나라에 태어난 사람보다 몇 배로 노력해서 겨우 기회를 마주해도 어떻게 그것이 나의 것이 되게 할지,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내가 한국에서 쥐고 있던 것들을 놓고 겸손하게 나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봉사하고 꾸준히 배우며 성장하면, 그 노력만큼의 보상이 돌아오는 곳이 내가 겪은 캐나다 사회였다. 그렇게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나는 이곳에 와서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아마추어 화가로 그림을 그리며, 갤러리의 홍보 및 프로그램 기획을 한다.






남편과 나는 11년 전, 1년 치 어학원 학비와 이민가방 4개를 들고 둘이서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유학생 다섯 명이 함께 쓰는 아파트에서 캐나다의 삶을 시작했던 우리, 지극히 보통사람이었던 우리가 해냈다면, '그리움이라는 앞면의 뒤쪽에 희망과 기회란 녀석이 반짝이고 있는 것' 그것이 캐나다 이민자의 삶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한국이든 캐나다든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공을 쏘아 올리는 당신을 1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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