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단골 카페의 사장님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카드 봉투를 스윽 내미셨다. 뭐지. 설마 결혼하시나? 그렇다고 나한테 청첩장을 주실 것 같지는 않은데? 알고보니 카페 개업 4주년을 기념하는 파티의 초대장이었다. 4주년이라니! 그렇게 짧은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닌 것 같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카페들이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성수동에서의 4년은 곱절로 쳐야 마땅할 것 같다. 아니, 그 4년 안에는 코로나까지 포함돼 있었으니 3배가 맞을 지도. 이렇게 귀한 파티에 누추한 저를 초대하시다니! 이제는 청첩장도 받을 일이 거의 없어진 나이에 받게된 초대장은 너무나 생소하고 어색했지만 감동이었다.
나 역시 2년 전까지 4주년을 축하받는 자영업자였다.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던 단골분들께 그동안 축하와 격려, 칭찬과 불만을 골고루 들어왔다. 그리고 4주년 이벤트를 끝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그 4년은 직장인 시절 회사 안에서 체감하는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힘겨웠다. 그동안 쳇바퀴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다람쥐였다면 이제는 손과 발, 심지어 머리까지, 사용할 수 있는 부위는 총동원해 접시 여러 개를 동시에 돌려야 하는 곡예사가 된 기분이었다.
결정의 자유와 동시에 따라오는 온전한 나의 책임, 지출하는 비용은 모두 내 돈, 매출이 떨어질 때의 스트레스, 뜬금없는 컴플레인과 무리한 고객의 요구, 협찬도 아닌데 항상 예쁜 말로 가득한 후기를 정성스럽게 올려주던 손님, 플리마켓에 간식을 사들고 응원 와준 단골 손님의 얼굴들. 재고 확보가 되지 않아 배송을 2번이나 미루게 되었는데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시던 마음의 크기를 감히 헤아릴 수 없던 손님. 내 보잘 것 없는 주문량에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다며 응원해주던 도매상 사장님들. 잠시나마 나의 지난 4년간의 고군분투가 스쳐 지나가서 짠해졌다.
과연 사장님에게는 어떤 시간들이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아는 것은 겨우 임대료 문제 때문에 강행한 1번의 이사,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매장 영업을 중단하던 시간들, 창업 멤버들과의 이별, 어머님의 도움으로 확장하게된 베이커리 메뉴 정도이겠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들을 대면하며 셀 수 없는 미소와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내 스탬프 카드가 보관된 통의 포지션이 '핵단골'이기 때문에 의무를 져버릴 수 없어 덥썩 가겠다고 해버렸다. 그리고 파티 전날, 그동안 얻어먹었던 셀 수 없는 서비스 커피들을 떠올리며 보답과 축하의 의미로 작은 화분을 하나 준비했다. 당일에는 카페 안에 정성스럽게 핑거푸드를 준비해 두셨고, 샹숑 가수를 초대해서 작은 공연을 보여주셨다. 초대된 약 20명의 손님들에게는 입장할 때 제비뽑기 같은걸 시키셨는데 공연이 끝난 후, 꽝 없는 럭키드로우 선물까지 챙겨서 보내셨다. 뭔가 내가 이 카페의 4주년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게 된 것 같아서 무척 뿌듯해지는 밤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커피와 음료점업 점포 수는 9만 9천개를 기록했다고 한다. 2023년인 지금은 아마 10만을 가뿐히 돌파했을 것이다. 회사 관두고 카페나 하고싶다는 말은 쳇바퀴 속 다람쥐가 아무래도 지니에게 한참 잘못된 소원을 빌어 곡예사가 되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사장님의 카페가 오랫동안 성수동을 무탈히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