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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음식의 힘

부모님 방문

뼈 스캔과 CT 검사 이후, 몸속에 남아 있을 방사성 의약품과 조영제를 배출하기 위해 열심히 물을 마셨다.  온 종일 먹고 싸는 일만 반복하고 있자니 신생아가 된 기분, 정확히 말하면 너무 단순하게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살짝 우울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집에 있어?]


"응, 왜?"


[나, 너네 집에 좀 가려고.]


"왜?"


[그냥 가려고.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넌 아무것도 준비 안해도 돼.]


"알았어."     


요새 엄마에게 매일 안부 전화가 온다. 자식이 부모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내가 암에 걸린 걸 알게 된 후 다시는 못 볼 딸처럼 대하시는 울 엄마. 속상하면서 불편하다. 그러더니 급기야 오늘은 우리집을 방문하겠다고 하신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거의 뷔페 수준이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너, 먹으라고..."     


부모님이 바리바리 싸 오신 반찬이며 과일은 한번에 들고 들어 오기엔 양이 너무 많아 나와 남편이 손을 거들어야 할 정도였다. (명절때도 이 만큼은 안 했던 것 같은데.....)      


엄마는 들어오시자마자 젖은 눈동자로 서둘러 반찬들을 꺼내고 국을 가스불에 올리셨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들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명절 음식하는 것도 버거워하시는 우리 엄마. 이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하셨을까.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로 웃다보니 울적한 기분이 서서히 풀렸다. 역시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의 힘인가.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사실, 만약 내 주변 누군가가 몸이나 마음이 많이 아파 집에 있다고 하면 나도 음식을 보낼 것이다. 밑반찬도 좋고 보양식도 좋다. 물론 따뜻한 말도 필요하지만, 말로 하는 위로에 음식까지 더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처음 암 진단을 받으면, 불안과 우울함에 모든 의욕이 빠져나가 밥 할 기운도 먹을 기운도 사라진다. 그럴 때 누군가 정성이 담긴 음식을 보내주면 적어도 끼니 만큼은 거르지 않을 수 있다.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을 때 보이던 엄마의 오징어 무침. 그 덕분에 나는 꼬박꼬박 밥 숟가락을 들었고 식구들에게도 제대로 된 끼니를 줄 수 있었다. 특히 유방암 환자 중에는 가족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주부들이 많기 때문에, 반찬은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셨다. 어릴 적 수영장에 놀러갔던 얘기가 나왔다. 5살 어린 딸이 미끄럼틀 타다 물 먹었던 일을 어제 일 처럼 얘기하시는 부모님. 마치 아기를 바라보듯 나를 보신다.  당신들 눈엔 여전히 어린 아이로 보이는 걸까.      


주차장까지 부모님을 배웅해 드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 될 꺼라고. 가족들이 든든히 대기하고  있으니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엄마를 더는 보기 힘들어 얼른 차 뒷문을 열었다.      


"알았어, 빨리 가."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지만 가슴이 아려왔다.      


자식이 아프다는 것. 그게 부모에게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인지 알기 때문에. 나중에 들었지만 평생 웬만한 일에는 흔들림 없던 아빠가 내 병에 대해 처음 듣던 날엔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암 진단을 받고 충격에 빠졌을 때, 그래도 자식이 아닌 내가 걸린 걸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다. 평생 세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라면 우리 집은 내가 당첨되었으니 제발 내 아들은 이런 병 안 걸리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예전에 알던 교회 지인이 고등학생 자녀를 암으로 잃고 충격으로 한국을 떠났다.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똑똑하고 예쁜 아들. 그 아들이 부모 앞에서 눈을 감았을 때 느꼈을 비통함을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을지. 강철수 작가의 '아들을 보내며'에 나온 말처럼 그 빙산같은 한은 평생 다 녹여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부모님 마음에도 비수가 꽂혔다. 살점을 후벼파는 아픔이리라. 그래서 기도한다. 제발 우리 부모님 저보다 덜 속상하고 덜 아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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