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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수술 전 최종 검사 결과

추가 조직검사

"사람 왜 이리 많아..."

국립 암센터 신관 3층 유방암 센터. 세상은 넓고 유방암 환자는 많구나. 앉을자리 하나 찾기 어려운 대기실 풍경은 추석 날 고향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터미널 대합실 같았다.      


환자를 접수하고, 수술에 대한 안내를 하고, 다음 진료 날짜를 잡느라 분주한 간호사 선생님들. 내 앞의 환자에게 밝은 목소리로 1년 후에 뵐게요라고 하자, 환자 역시 웃으며 화답한다. 저분은 치료가 다 끝났겠구나.  부러운 나머지 그분의 뒤통수를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다. 중간중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여느 바쁜 직장과 다를 바 없는 이곳. 이질적인 활기참 속에서 나만 슬프고 진지한 사람 같아 조금 센티해졌다.


"000 환자 분 들어오세요."     


진료실 문이 열리고 신랑과 함께 들어가는데 심장이 두근거린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처음 조직 검사했던 동네 병원에선 초기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암이 커졌거나 다른 곳에  전이된 건 아닌지.  의사 선생님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또다시 최악의 상황만 압축하고 있었다.      


"검사받는데 너무 오래 걸렸죠? 고생하셨어요."     


주치의 샘의 따듯한 인사에 잠시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침이 꼴딱 넘어가고 입술이 말라왔다.     


"다행히 전이는 없어요. 2차 병원 조직검사 결과대로 암 크기도 크지 않아서(1.3cm 추정) 부분 절제 정도만 할 것 같아요. 수술 날짜는 일단 4월 11일로 잡혔어요."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작은 종양 하나만 제거하면 된다니 갑자기 희망이 솟구쳤다.  게다가 전이도 없다. 목이 부을 때마다, 속이 쓰릴 때마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갑상선 암, 위암, 뇌종양까지 최악의 경우만 상상하며 얼마나 맘을 졸였던가. 생각보다 좋은 결과였다.(목이 아픈데 도라지 청을 찾는 게 아니라 갑상선 암을 상상했던 나. 정말 약해졌다.) 얼른 수술을 마치고 이 암덩어리를 몸에서 떼 버리고 싶었다.     


"음,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mri 검사 결과, 왼쪽 가슴에도 이상 소견이 보여 추가 조직검사가 필요하니 조직 검사를 받고 가라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왼쪽이 심상치 않았다.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따끔거렸다. 그게 처음으로 유방 초음파를 받게 된 계기였다.(물론 암은 뜻밖에 오른쪽에서 발견되었지만)      


어쨌든 초음파에선 안 보이던 문제를 mri 가 발견했으니 조직 검사는 피할 수 없다.(아.... 또 총을 맞으러 가야 하는 가.)  그래도 일단 정밀 검사 결과를 듣고 나니 한시름 놓였다. 더 이상 말기암 환자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으니.     


선생님은 왼쪽 가슴 결과를 보고 이상 없으면 예정대로 4월 11일에 수술한다고 했다. 진료실을 나와 조직 검사실에 갔다. 예전에 한 번 맞아(?) 봤지만 바늘을 보면 언제나 떨린다. 

침대에 누우니 차가운 알코올 솜이 가슴에 느껴진다. 우욱... 이제 곧 총을 쏘겠군.     


"자, 시작할게요."     


으아~~~ 이제 발사하는 건가요? 아흑 흑, 공포의 총소리........................ 가 들려야 하는데, 어랏! 이게 뭐지?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지난번 조직 검사랑 확연히 달랐다. 오른쪽 조직 검사했을 때는  분명 '탕'소리가 나면서 가슴 깊이 무언가 팍! 팍! 꽂혔었는데, 이번에는 딸깍 딸깍 마치 스테이플러로 가슴을 찍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심지어 느낌도 그랬음) 뭔가 얕은 곳에서 가볍게 찔리는 것 같은?(100% 주관적인 내 생각임) 어쨌든 공포는 컸지만 통증은 없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며 애타게 결과를 기다리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초기 암에 크기도 작고 전이도 없어서 부분 절제하면 될 것 같다고 하자, 다행이다 감사하다 하시며 울음을 터트리셨다. 여기까진 좋았으나 만약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나 따라 죽으려고 했다면서 오열을(아, 엄마 그건 좀 아니잖아요.) 시작하시는 바람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사랑도 타이밍, 암밍 아웃도 타이밍!     


암밍 아웃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친한 지인들이나 동생은 내 병에 대해 일찍 알아도 같이 걱정해 주고 기도해 줘서 고맙고 위로가 되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평소에도 자식 일에 노심초사 예민한 울 엄니는 나랑 똑같이, 아니 나보다 더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셨다.  저러다 엄마 먼저 쓰러지실까 내 몸보다 엄마 건강을 더 염려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느 정도 결과 나온 후에 알려 드릴 걸... 솔직히 후회했다. 엄마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왜 그랬을까. 판단력이 지하로 내려갔다 보다. (이후 엄마에게는 경과 좋은 건만 편집해서 알려드렸다.)          

                                      

집에 와 쉬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3월 31일에 병원에 오라고 했다. 뭐지? 검사 결과가 이렇게 몇 시간도 안 돼서 나온다고?      


"이렇게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조직 검사해 보니 별거 안 나왔다 보지. 그래서 빨리 수술 진행하려고 그러는 거 아냐?."      


신랑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감정이 또 오르락내리락했다. 감정의 정리. 참 어렵구나. 온갖 두려움과 불안이 올 때마다 탈탈 털어 이불처럼 잘 개어 놨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너무 높이 쌓였다. 흔들흔들, 툭 치면 무너질 것 같다.       


이 감정이 몰려오면 이것저것 최악의 케이스만 골라다 내 몸에 주입시킨 후, 오한에 몸을 떤다.  피가 식으면서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 공포에 부들부들 떨린다는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이렇게 또 3월 31일까지 추가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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