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라 Oct 30. 2022

기다림의 시간, 우울함을 견디는 법

아들이 코로나에 당첨되다. 

[안녕하세요, 00이 어머님, 여기 학굔데요. 지금 00 이가 머리 아프고 열난다고 보건실에 왔거든요. 진단 키트 검사 결과는 음성인데, 그래도 병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중학교 때도 시험 기간에 미열, 두통으로(시험 준비는 그닥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심하게 받는 미스터리 한 체질) 선별 검사소에 두 번이나 간 적이 있었지만 음성으로 끝났기에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검사를 위해 근처 내과에 갔다. 이젠 선별 진료소에 가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일반 병원에서 하는 신속 항원 검사도 코로나 검사로 인정이 되므로.(물론 검사비 5,000을 내야 하지만)     


요새 병원에 코로나 환자가 너무 많아서 검사받으러 갔다 되려 감염될 것 같다는 소문과 달리 타이밍이 좋았는지 늦은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환자들이 별로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코에 면봉을 넣어 휘휘 돌리시더니 10분 후에 결과 들으러 다시 오라고 했다.      


"결과는 양성이고요....."


양성이라니! 양성이라니!!!  드디어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오셨군요!!!!     

의사 선생님은 차분히 격리 기간 동안 주의 사항과 절차에 대해 설명하셨다. 선생님이 얘기하는 동안 난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며 슬쩍 울 아들 옆에서 한 뼘 정도 떨어졌다.       


"선생님, 진단 키트 두 줄 나온 거 사진 찍어도 돼요?"     


의사 선생님은 별 일 아닌 듯 그러라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오 마이 갓을 읊조렸다. 역시 SNS 세대인가.  아이는 선생님에게서 키트를 건네받아 휴대폰으로 찍은 후 바로 카톡 프사로 올렸다.     


애가 양성이 나오는 바람에 나도 즉시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     

데스크에서 수납을 마친 후 아들에게 '우리 갈 때는 따로 갈까?' 했더니, 옆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박장대소를 하신다.      


운전하는 내내 모든 창문을 활짝 내렸다. 창 밖에 소음을 온몸으로 맞으며 서둘러 집으로 왔다.     


"너, 이제 화장실 갈 때 빼고 니 방에서 나오지 마."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2층 자기 방에 감금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화장실이 3개라 동선이 겹칠 일은 없었다. 그래도 방을 나와 화장실에 갈 때는 마스크를 꼭 끼라고 했다.      


집에서 자가 격리했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한 명이 걸리면 다른 가족들 전염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다. 좁은 공간에 함께 있으니 자가 격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뜻.     


평소에는 코로나 감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4월 11일에 수술이 잡혀 있다. 실제로 코로나에 걸려 유방암 수술이 2,3 주씩 연기되는 환우들이 있었다. 주치의가 감염돼서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      


왜 아들은 이 타이밍에 코로나에 걸린 건 지. 짜증이 났다. (애가 무슨 잘못인가. 마스크 벗고 급식 먹는 고딩이 안 걸리는 게 이상하지) 갑자기 나도 목이 아프고, 코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것 같았다.      


어쨌든 아이는 방에서 나올 수 없기에, '삼 시 세끼 룸 서비스'라는 갸륵한 임무가 추가되었다. 쓸 일이 없어 처치 곤란이던 일회용 용기들을 꺼내 시리얼을 담아 문 앞에 놓은 후 전화를 걸었다.     


"아침밥 문 앞에 있어. 문 열고 가져가."     

     

     

일회용 대접이 없어 커피 컵에 담은 시리얼과 우유. 나름 카페 분위기.


점심에도 일회용 접시에 쉬림프 파스타를 담아 보내 드렸다.(일회용을 쓰지 않으면 식기를 매번 소독해야 하기에 힘들다)       

   

3년 전 집들이 때 쓰고 남은 접시 활용



아프면 죽을 먹어야 한다는 건 편견인가 보다.  밥은 메슥거려 못 먹겠다며 자극적인 음식만 요구했다. 짜파구리를 만들었다. 

짜파구리, 처음 만들어 봄, 맛있음.



     

다행히 아이는 이틀 만에 고열과 기침이 가라앉았다. (Thanks God!) 평소에도 아침 인사로 엄마를 안아 주던 스위트 한 아들.  잘 있는지 전화했더니, -모든 대화는 휴대폰으로 하는 중- 엄마랑 허그하고 싶다고 한다. ♥     

아들의 회복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려 수술 날짜가 미뤄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 그동안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건 아닌지 하는 공포, 3월 31일에 알게 될 왼쪽 검사 결과에 대한 불안들이 파도처럼 밀려났다가도 금세 내 마음을 쳤다.      


집에서도 온종일-잘 때 조차도- KF94 마스크를 썼더니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팠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닥친다고, 생리통에 질염 증상까지. 특히 질염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완치되는데, 지금 내 상황에선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스트레스를 떼낼 수가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묵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기도가 끝나자마자, 나랑 조금이라도 비슷한 증상(나중에 보니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던)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미친 듯이 검색한다. 그리고 그 끝이 안 좋으면 오들오들 떤다. 이걸 하루 종일 반복.     


생각보다 좋은 검사 결과를 받았던 건 까마득히 잊고 안 좋은 케이스에 내 증상을 겹치며 울화와 분노, 짜증, 슬픔을 토해내는 하루하루. 힘들다. 그때 신랑이 말을 건넨다. 


"산책 가자."

     

햇살 받으며 산책하기-우울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걷는 중에도 순간순간 눈물이 나와 눈을 꾹꾹 눌러댔다.(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이 눈물은 언제 멈추려나) 그렇게 한 2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기분이 화악 풀어졌다. 신기했다. 우울할 때 햇빛 받으며 걸어보라는 조언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      


미국인들이 왜 캘리포니아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간다. 파란 하늘이 너무 지겨워 비 오면 좋겠다고 툴툴댈 만큼 연중 화창한 날씨.(우산을 일 년에 20번도 안 썼던 것 같다) 겨울에도 아이들이 야외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점심 급식을 먹을 정도로 따뜻한 햇살. 거기 있을 때도 축복받은 기후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혹한의 겨울을 지내다 보니 더더욱 그립다. 


왜 우울할 때 햇빛 받으며 걸으라고 조언하는지 알겠다.  꽤 괜찮은 치료 방법인 것 같다.       

이전 09화 수술 전 최종 검사 결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