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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추가 조직 검사 결과

상피내암 추가 발견, 유전 검사(브라카 검사)

유방암 센터는 오늘도 바쁘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의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맨 뒤 구석 자리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접수를 하면 순차적으로 전광판에 이름이 뜨는데, 벌써 맨 위에 내 이름이 있다. 웬일이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자세히 다시 읽어보니 이름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진료의.    

  

나랑 이름과 성까지 완벽히 같은 의사가 있다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면, 의사가 자기랑 이름이 같은 환자를 만나면 각별한 마음이 든다던데. 주치의를 바꿔 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가 제일 초조하다. 오늘도 두근두근. 이럴 땐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 내가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 제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무너진 이 시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차례가 되어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들어갔던 환자가 5분도 안 돼서 나온다. 1년 정기 검진인 듯했다.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남편과 손을 잡고 가는 여자가 무척 부러웠다. '일 년 후에 오세요.' 나도 그 말을 듣는 날이 올까.     


"000 환자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표정을 보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의사 선생님 얼굴부터 살폈다. 눈은 웃고 있지만, 눈썹이 살짝 내려가 있었다. 10초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지난번 만났을  때와 달리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시더니, 내 생년월일을 물으셨다.      


"왼쪽도..... 암이 나왔어요." 

    

툭, 마음 깊은 곳에 있던 희망의 실이 끊어지면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신경 쓰이던 왼쪽 가슴. 결국 암이었다.     


"수술장에서 열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일단 왼쪽은 상피내암이에요. 아직 유관을 침범하지 않은 초기 상태긴 한데, 좀 넓게 퍼져 있어서 전절제를 할 수도 있고요. 암이 유두 근처에 있어서 유두 보존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일단 양측성 암으로 나왔기 때문에 유전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유전 검사 결과에 따라 만약 변이가 발견되면 난소 및 자궁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 근데, 지금 제 말 잘 귀에 안 들어오시죠?"     


왼쪽 가슴도 암이라는 말- 이후 머리가 얼어버렸다.  혹 하나만 톡, 떼내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을까.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바닥으로 끝없이 끌려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는 걸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이 병에 걸리고 나니, 비관주의만큼 조심해야 할 것이 '막연한' 긍정주의다.           


신랑 손에 이끌려 멍하니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유전자 검사 날짜와 일정을 설명했다. 진료비를 내역서를 보니 2백만 원에 가까운 유전자 검사 비용 중 12만 원 정도만 본인 부담금이었다. 양측성 암 환자는 산정 특례 대상이라 보험이 적용되었다.      

     

산정 특례가 적용된 유전 검사비.


     

유방암 센터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왜 왼쪽도 암이냐'하고 넋두리를 했다. 신랑이 '그러게.' 딱 한 마디 했는데 눈물이 터졌다. 하행선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서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서럽게 울었다. 어른이 된 이후,  그렇게 아이처럼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신랑이 손을 꼬옥 잡아 줬지만, 놀이 공원에서 엄마 손을 놓친 아이가 공포에 떨며 울 듯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난 인생에서 길을 잃었고, 정확히 말하면 이승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 모든 상태를 알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추가 암 소식을 전하며 부모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한쪽이든 양 쪽이든 수술은 한 번일 테니(이때만 해도 한 번 일 줄 알았다.)     


양쪽 가슴에서 암이 발견되고 나니, '전이가 없었다'는 수술 전 검사 결과에 의심이 들었다. 암들이 금방 온몸으로 퍼질 것 같았다.      


브라카 검사 결과 변이가 발견된다면.  암 수술 이외에 자궁, 난소 제거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여동생이랑 엄마도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겠지. 아들 역시 유방암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수도 있고.(딸이 아닌 걸 처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게 무력감과 자괴감이 한데 엉켜 맥이 탁 풀렸다.    

  

막연한 긍정은 위험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일단 초음파로도 안 보이던 암을 mri 가 초기에 발견했다. 아직은 세포를 침범하지 않은 제자리암이다. 전이도 없다. 이 사실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야(여기려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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