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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릿 세이 Oct 21. 2023

막연한 '꿈'은 분명한 '목표'로 이동한다.

절대 놓치지 말고, 잘 챙겨. 니 꿈!

‘우선 항공권 예매부터 하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기회가 왔고 한창 열기가 달아올랐을 때 망설이지 말고 단숨에 해치우자. 가장 빠르고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출발 날짜가 정해지면 일정이라는 압박에 떠밀리어서라도 여행 준비를 마칠 것이다. 

이번 순례길만 성공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이고, 포기가 습관이 되어버린 이 진흙탕 같은 지긋지긋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앞으로는 행복하고 달콤한 꽃 길만 걷는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지도 몰라. 어깨 펴고 가슴 활짝 열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밝은 빛이 나를 성공과 행복이 가득한 세계로 이끌어 줄 것 같은 행복 희망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디에 붙어 있는 거지?’

닥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건 막연한 ‘꿈’에서 분명한 ‘목표’로 넘어가는 과정에 겪게 되는 난관이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과정이 그랬다. 나는 은연중에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한 가지라도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만 앞서 있고 준비는 안되어 있다는 사실에 적잖게 당황했다. 순례길 정보가 없다는 자각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수많은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디로 가야 하지? 순례길을 걷는데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여행 물품들은 어떤 것들이 필요하지? 여행 경비는 얼마나 필요할까? 그런데 정작 이 많은 정보는 어디서 얻지? ‘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당황했다. 걸어서 도착하는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정해져 있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수십 종류에 달했다. 인기 있는 길은 은의 길, 북쪽 길, 포르투갈 길, 프랑스 길 4종류.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 길 800km였다. ‘산티아고 순례길’하면 떠올렸던 그 길. 고통을 감내하며 걷기를 원했던 바로 그 길.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당연히 프랑스 길이라 여겼다.




‘아차 시험이 있었지.’

날짜를 계산해 보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부터 시작해 딱 40일이다. 직업상담사 2급 필기시험에 이미 응시해 놓은 상태라 8월 18일 전까지는 꼭 돌아와야 했다. 시험을 포기하고 여유롭게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이번 필기시험을 놓치면 또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건 피하고 싶었다. 프랑스 길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프랑스 길은 800km를 완주하는데 30일~40일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순례자들은 보통 하루 20km~25km씩 걷고, 포르투갈 길 240km는 넉넉하게 2주 정도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해안선을 따라 풍경도 예쁘다고 하니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순례길 완주도 할 수 있고, 자격증 시험공부 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7월 13일 주말에 출발해서 8월 3일 귀국하는 3주 일정이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항공권 예매를 시작했다. 마지막 ‘결제 버튼’만 누르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선뜻 예매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왜 망설여지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해 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하루만 더 고민해 보자.’




7월 12일 목요일 새벽 2시.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다. 하루만 더 고민해 보자. 하루만 더…. ‘하던 게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언제 떠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생필품으로 무엇을 챙겨갈 것인지.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손 놓고 허무하게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순례길 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이 밀려왔다. 밥을 먹어도 밥맛을 느낄 수 없고, 휴식을 취해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 음식을 먹어도 음식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어도 즐겁지가 않다. 더 이상 먹고 싶지도 않았고, 자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다. 더 이상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이나 욕구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은 시간대로 남아돌았고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불안은 순례길에 관련 문제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불안에 떠밀려 순례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프랑스 길을 걷고 싶다. 순례길을 내 두 발로 당당하게 완주하고 싶다. 내 두 발로 당당하게 완주하지 못한다면 공들여 스페인까지 날아간 의미도 없고 평생을 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내 두 발로 끝까지 도달하고 난 후에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은 피하고 싶다. 확실한 것이 좋다. 확실하게 포르투갈 길은 10일 정도면 완주할 수 있지만 순례 일정이 너무 빨리 끝난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계획이 축소되면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다. 딱히 끌리지 않는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서서히 의욕도 줄어들었다.

‘이 여행을 꼭 가야 할까? 그냥 가지 말까?’ 




이제 그만 포기하려는 찰나 갑자기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억울한 분노가 솟구쳤다. 내 꿈과 희망이 좌절되는 것이 불쾌하고 억울한 분노감이 일었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 무산되고, 원하지 않는 삶이 되풀이되려 하자 분노와 울분이 섞인 진심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야.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나는 순례길을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나는 순례길을 가고 싶어. 도전하고 싶어. 그곳에서 고통 속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싶어.

내가 왜 원하는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해. 내가 왜 포르투갈 길을 선택해야 돼. 그냥 난 프랑스 길을 걷고 싶어. 난 그 길이 걷고 싶은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다른 차선책으로 선택된 길을 걷고 싶다는 게 아니야. 나 프랑스 길로 갈래. 더 이상 내가 처한 상황과 타협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 내가 처한 조건에 맞춰서 내 꿈을 축소하지 않을 거야.’ 


그 순간 꺼져가던 열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쿵쾅쿵쾅 심장이 빠르게 뛰고 생각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내 길을 가로막고 있던 커다란 벽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하려 했던 사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어쩌다 생각이 이 지경까지 흘러왔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고통 속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던 굳은 결심과 의지는 어디 가고 ‘그냥 가지 말까?’라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을까?. 어쩌다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 보았다.


순례길을 떠나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감정이 싫었다. 이 불쾌한 감각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저런 행동을 취해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도 않는 길을 걸으려니 하기 싫어졌다. 다 관두고 싶다. 


계획이 축소되고 작아지면서 체념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스스로 포기하기에 합리적인 이유들을 끄집어 왔다. '시간이 부족하다. 완주 못할지도 모른다' 실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실패라니 안될 말이다. 먼 이국땅까지 가서 완주를 못하고 온다면 뭔가 찜찜하고 속이 후련하지 않을 것 같다. 완주하지 못하는 것은 싫다. 

차선책 다른 길을 찾아봤다. 바닷가 해안로를 따라 걷는 포르투갈 길이 끌렸다. 273km 10일 정도면 부담 없이 완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포르투갈 길로 갈까?' 포르투갈 길에 맞춰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려는데 쉽사리 예매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걷고 싶은 길도 아니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길이었다. 끌리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목표가 수정된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목표를 놓쳐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를 집어삼켜버린 듯 상황이 나의 꿈도 삼켜버렸다. 참 황당하고 어이없는 결과물이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포기할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나는 포기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내면 목소리가 말했다.

‘더 이상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길 아닌가? 퇴사까지 하고 고통 속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싶다고 했잖아. 이렇게 포기할 거야? 또 포기할 거야? ‘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다. 또다시 실패자로 남고 싶지 않았어. 포기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순례길을 떠날 거야.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이 몇 개이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나에게 순례길이란 '프랑스 길' 단 하나뿐이야. 내가 원하는 것은 프랑스 길을 걷는 것이다. 차선책으로 포르투갈 길을 선택해서 가고 싶지는 않다.


‘이 선명하게 알아지는 감각은 뭐지?’

내가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려졌다. 무엇이 잘못된 선택이고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분명하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전까지 몰랐던 것을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분명하게 알아차려지는 것일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었다. 꿈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목표가 중력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꿈을 놓쳤을 때 꿈이 나를 이끌어 주는 감각은 신비로웠다. 목표에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은 감정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 알 수 있었다. 꿈과 목표에서 멀어지면 좌절감과 우울, 무기력감을 느꼈다.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는 설렘과 기대, 희망이 느껴졌다.  

‘뭐지? 분명하게 인식되는 이 기분 좋은 감각은?


어떻게 이런 변화를 분명하고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과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의 차이인가? 아니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인가? 분명한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솟구쳤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과거에 실패한 것들도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공무원 시험 합격, 토익 700점, 몸짱 만들기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도대체 과거와 현재는 무엇이 다르길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번에도 과거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포기하는 선택을 하려고 했을 때 내면 자아가 나타나 잘못된 선택을 막아 주었다. 내면 자아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가능한 것은 포르투갈 길 vs 원하는 것은 프랑스 길

'가능한 것'에 나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기운이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길을 꼭 가야 하나?’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었다. 이미 가능한 것은 나를 설레거나 기쁘게 만들지 않는다. 기대와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설레게 하지 않았다. 나를 좌절감과 성실감의 쳇바퀴 속으로 집어넣는 느낌이었다. 주어진 조건에 이리저리 치이며 계획을 축소해서 맞춘다면 아무런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 가슴이 들뜨기 시작했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쟁취하겠다는 결단을 했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에너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쉬운 길을 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얻어진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희망이 샘솟고, 희망이 보일 때 설레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확장됨을 느꼈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없던 기운도 만들어지고 활력이 샘솟았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게 멈춰 있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사랑스럽고 대단하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사랑스럽고 대단하고 예뻐해 주고 싶었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나도 좋았고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능력이 되어가는 것도 좋았다. 나는 더 이상 내게 가능한 일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걸 위해서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쟁취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스스로를 한계를 만들고, 조건에 맞춰 살았던 과거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특히 취업 지원을 할 때 취업할 때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당한 회사에 적당히 지원서를 넣고 연락 오면 면접을 보고 입사했다. 웬만하면 서류 전형에서 붙으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게 자랑인 줄 알았다. 내가 잘나서 면접을 잘 봐서 합격한 줄 알았다.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삶, 얼마나 에너지 없이 살았는지 그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는지 깨달았다. 얼마나 내가 우물 안 개구리로서 우물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 그 안에서 얼마나 자만심으로 채워서 살았는지 그때서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실패할 도전도 하지 않았으니까. 과거의 나 또한 그 당시에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스스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와서 보니까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당연히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제한 선을 두었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인식되는 또렷한 감각이 좋다.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근사한 삶을 사는 것이고, 내가 멋있어지는 일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과 맞서 싸워 현실을 극복하는 삶이란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경험은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멋진 일이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주변 환경과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려면 강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주변 환경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다. 정말 멋진 자신을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는 것은 마치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라 자유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 정말 멋진 삶이 살아간다는 말이다.

목표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순간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린다. 

확장된 가능성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무엇이든 다 가능할 거 같은 기대감과 희망의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는 일은 꽤 만족스럽고 멋진 일이다. 마치 나 자신이 드라마 주인공이 된 듯한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성과 영혼이 합치되는 순간이다.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 속에 목표했던 것이 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 환희의 기쁨이 찾아온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노력하며 나아가는 과정과 결국 성취하고 이루어 냈을 때 ‘내가 해 냈어. 나도 할 수 있어.’ 자신에 대한 확신과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기분 좋은 설렘과 흥분이 일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토록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구나. 앞으로는 감정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설레고 기대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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