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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릿 세이 Oct 13. 2023

누나,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여기가 바닥이야.

“왜 힘든 길을 가세요?” 

퇴사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는 말에 한 살 어린 직장동료가 물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행군’이라는 것을 한다. 군장 20kg을 매고 40km를 걸어야 하는데 죽을 맛이었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이 딱 ‘행군’ 같아서 자기는 돈을 쥐여 준다고 해도 가기 싫단다. 그런데 그 험난한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간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에서도 걸을 수 있지 않아요? 여자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잖아요. 왜 꼭 먼 해외까지 가서 돈 들여, 시간 들여 고생을 사서 하러 가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네가 얘기하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야. 그래야만 포기가 습관인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 못 하잖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원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는 내가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할 상황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순례길에서 하루 25km씩 800km를 12kg 배낭을 메고 걸어서 완주해야 한다. 평소 5km를 걸을 때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러면 매일 최소 5시간 이상은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만 들어도 쉽지 않은 길이다. 분명 힘겹거나 포기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힘든 순간!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고통 속으로 나 자신을 일부러 밀어 넣으려 한다.


등에 짊어질 배낭의 무게는 인생에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걷다 보면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마도 무거운 배낭 탓을 가장 많이 하지 않을까? 삶에서 힘든 순간에 누군가를 원망하듯 말이다. 세상을 원망하든 주변인을 원망하든 자신을 원망하든 그 원망의 순간을 들여다보고 싶다.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게 될까? 최악의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할까? 힘든 순간에 버리게 되는 것은 내 인생에서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리라. 반대로 힘든 순간에도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가는 것은 인생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겠지.

나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소중하지 않을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을지 알 수만 있다면 소중한 것은 취하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나면 내 삶의 무게가 덜어져 지금보다 가벼워지지 않을까? 


최악의 순간이 되어야만 놓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최악의 순간에서조차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악의 순간에는 놔 버리고 버릴 수 있지만, 최악이 아니기에 여전히 놓지 못하고 삶에 무게를 더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 속에서 나의 눈을 가리고 있는 불순물을 없애고 싶다. 소중하지 않은 것과 불필요한 것들, 나에게 의미 없는 것들은 가려내고 싶다. 중요하지 않은데 중요한 척하고 있는 것, 남들에게 의미 있을지라도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중요하고 소중한데 소중하지 않은 척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것, 나중에 챙기겠다며 구석으로 밀어 놓은 것들을 등한시하지 않고 돌보고 챙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싶다. 


지금은 불필요한 것들에 가려져 나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고통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구분해 내야 한다.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의 무게의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 그렇게 찾아낸 의미 있는 것들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단단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누나, 도대체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음…. 글쎄… 그런데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무슨 지인들 못할까, 싶어. 아마도 나에게는 지금이 바닥이지 않을까?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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