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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릿 세이 Oct 13. 2023

스물아홉, 7번째 퇴사

정말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스물아홉, 7번째 퇴사를 했다. 어쩌다 보니 '포기가 습관인 나'가 되어 있었다. 

'정말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을까.'


1년 전 제조회사 품질 관리팀 막내로 입사했다. 연봉 2800만 원, 업무도 만족스러워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평생직장이다’ 여기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등치를 키워 나가는 중이라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업무에 치여 만신창이가 되어가는데 비해 업무 성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더욱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심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7번째 퇴사를 했다.


내가 원했던 삶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전문적인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 열정적으로 일하되 힘들더라도 보람을 느끼는 것, 지속적으로 근무해서 직급이 오를 것, 근속 일수와 직급이 올라가므로 인해 급여도 오늘은 것, 급여가 오르므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 그렇게 일상생활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바람이 왜 내 삶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내가 원했던 것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일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최선이라 생각하며 좀 더 잘 살아보자고 했던 결정들이었다. 내 삶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며 열심히 노력했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일까 재고 따져가며 했던 선택들이 내 삶을 이리 망쳐 놓을 줄 그때는 몰랐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 이미 꼬여버린 인생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결국 내게 남아있는 건 다른 직종을 전전하며 쌓인 ‘10년 차 직장인’ 그리고 ‘만년 사원’이라는 꼬리표뿐이다. 




틀어진 인생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늦었지만, 정말 너무 많이 늦어서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꼬이고 뒤틀린 내 삶을 바로잡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 못 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 걸까, '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한부 선고나 교통사고 같은 죽음의 위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와 행복이 가득 담겨있었고, 나는 그들의 행복한 변화가 부러웠다. 

‘만일 나에게도 저들과 같은 일이 닥친다면……..’ 


만약 나에게도 최악의 고통이 닥친다면 무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서는 알 수 없는 것. 괴롭고 고통스러운 최악의 순간이 되었을 때만 알 수 있는 것. 인생 최악의 순간이 닥쳤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고 싶다.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싶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고통의 순간이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일단 걸어보자. 최악의 고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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