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o bella ciao

잠 못 드는 밤

by 하이움


나이 탓인지 밤에 잠 깨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일어나면 계곡물로 씻은 듯 말간 아침일 때가 얼마나 좋았던 건지요

쌩쌩한 기운으로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던 날들이

전생처럼 멀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러다 보니 잘 자고 일어났을 때는 횡재한 기분마저 듭니다.

다시 누워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때는 아무리 양을 세고 별을 세어 보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냥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수밖에요.


거실로 나와서 거리의 불빛들을 구경합니다.

반짝거리는 가로등 너머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큰 도로가 보이고

그 아래로 가끔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다 보면서

이 새벽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하고

이런 새벽에 저렇게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의 고단함을 헤아려 보곤 합니다.


주택으로 옮기고 나서는 한동안 잘 자는가 싶었는데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잔 날은 어쩐지 일찍 눈이 떠져 더는 저항하지 않고

깨끗하게 잠을 포기하고 침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아파트처럼 불빛들이 보이지 않으니까

스탠드를 대신 켜고 커피를 한잔 마시기로 합니다.

어차피 더 잠을 청하기는 걸렀고 오랫동안 마셔온 커피는 친구 같아서 위로가 되니까요.

새벽에 굳이 드립커피를 내리고 있자니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무슨 커피를 그렇게 힘들게 마시노'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습니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엄마다운 말이라고 생각했지요

반면에 그렇게 내린 커피를 내어 드리면

우리 딸이 내려주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해주시던 아버지..


뭐든 최고다, 이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시던 아버지

주눅 들어 있거나 걱정이 많은 때는

괜찮다는 말로 토닥거려 주시던 아버지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힘이 되었고 좋았습니다.


달그락거리며 커피를 끓이고 있는 동안

밤의 적막감은 어느 정도 걷어지고 그래도 세상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는 생각이 깃듭니다.

스탠드의 노란 불빛,

따뜻한 커피, 한 권의 책..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내 모습만 반사되는 거실창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깨어 계실까..


그날 이후로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했으니

아마도 깨어 계시겠지요.

권태로운 하루에 잠이라도 위안이 되어 주면 좋으련만

아버지의 눈꺼풀은 너무나 가볍겠지요.


잠 못 드는 밤

폰을 보고 계실까요 책을 넘기고 계실까요

문득 재밌는 생각이 났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우리 부녀가 닮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것 마저 닮은 아버지와 나,

<메리포핀스> 영화 기억나시나요


예전에는 주말이면 오래된 명작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해주곤 했는데

언제나 끝까지 보지 못하고 먼저 잠이 드는 엄마와 달리

아버지와 나는 자정까지 보고 잠들곤 했는데 아마도 그때 봤던 것 같고

아이 키우면서 저는 다시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같이 한밤중에 깬 날은

문득 메리포핀스의 우산을 잠시 빌렸으면 좋겠다 생각이 드네요

어디든 날아오를 수 있는 마법에 우산,

그 우산을 타고 아버지와 내가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우리가 사는 중간즈음 어느 2층집 지붕 위도 좋고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꽃향기를 밤새 맡으면서

호수에 비친 달을 배경 삼아 소곤소곤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나눌 이야기가 많을 테지요.


요즘 아빠가 아니었기에

밤마다 그림책을 읽어주지 못했고

날마다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고

철마다 모험을 떠나지 못해서

그래서 지금 눈물이 많은 거라고 서럽게 눈물 흘리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버지 그만 눈물을 닦으세요

우리에게 모자란 날, 부족한 날들이란 없었으니까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달콤한 잠을 청하세요


잠 못 드는 밤

달의 돛단배는 제가 띄울게요







(The Swingle Singers의 Ciao Bella Ciao는 이 글을 쓸 때 들었던 음악인데 왠지 모르게 울컥해 버려서 제목으로 빌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