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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림 Oct 25. 2024

불가해한 사건, 삶으로 운전

김숨 「룸미러」

04편 연속 

  

  「룸미러」비친 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아이들이 박제 새나 도마뱀처럼 생명을 봉인 당했는지, 정말 깊은 잠에 빠졌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부부가 아이들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처소에서 탈출한 부부가 삶을 향해 질주하는 정황은 아니다. 꽉 막힌 도로, 연료가 바닥난 차, 부부의 힘으로 해결은 불가능하다. 가족의 삶은 도로 환경이라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봉인 당했다. 외부의 힘은 사회라는 거친 삶터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다. 

  차에서 내린 부부가 발 디딘 미지의 세계는 죽음 이후의 세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란 관광버스는 베르나 곁에서 죽음을 싣고 내달리는 중이며 차창에 기댄 늙은이는 죽음의 사자처럼 그녀 가족들의 차를 쏘아본다. 가족이 탑승한 베르나 앞 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 새 떼가 출몰하고 돼지들의 죽음이 난무하는 도로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있다. 그녀의 눈앞에 끝없이 늘어서 있는 차들, 도로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소실점을 향해 이동한다. 무리가 늘어나는 만큼 주변에 멈춘 차들은 텅 비어간다. 도로의 소실점은 곧 삶의 소실점이다. 

  소설에 투영된 죽음의 시나리오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비율은 199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2002년 카드대란으로 이어지면서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기점으로 역대 최고치(15,906명)를 찍었다. 현재까지도 인구 10만 명당 매년 27명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 생명 권리를 포기한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2.4배 높은 수치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며 경계 위기가 자살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특히 경계해야 할 지점은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생명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반자살로 포장된 부모의 자식 생명 침해는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 덧붙여 정부는 국가의 위기관리 실패로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의 비명에 답해야 하며 양극화 해소 방안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정책 보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룸미러」는 길 위에 펼쳐진 소외계층의 삶을 비춘다. 거미줄처럼 깔린 도로는 경제 계급을 표상하는 기호이며 속도 경쟁에 매몰된 자본주의 얼굴이다. 남편은 경쟁 생태계에서 밀려난 현대인의 기표다.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낯선 것이 바로 삶이다. 삶은 불가해한 사건으로 실존의 층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이 장소’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질주는 삶으로의 운행이다.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 운전대를 잡을 것이며 도로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역동적으로 흘러왔으며 그 중심에는 인생이라는 거친 도로에서 삶을 위해 질주하는 99퍼센트의 서민들이 존재했다. 김숨 작가는 물질문명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봉인된 삶을 모빌리티 시스템으로 풀어냈다. 문학은 삶으로의 운행을 추구하는 예술 장르임이 틀림없다.   


01-05편 마침.  


<참고 문헌>


1)김숨, 「룸미러」, 간과 쓸개, 문학과 지성사, 2011.

2)닐 아처, 「길 위의 장르」, 피터 메리만 외 9인, 김태희 외 3인 역, 『모빌리티 인문학』, 앨피, 2019.

3)존 어리, 김태한 역, 『모빌리티』, 2022, 40쪽. 존 어리는 이동과 관련 있는 도로, 정류장, 기차역, 부두 등의 장소를 사이 공간, 중간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사이 공간은 마크 오제가 주장한 비장소와 매개적이다. 관념으로 존재하는 가상공간, 비현실적 공간의 개념으로 정체성 상실, 관계의 해체 양식을 띤다. 또한 실체적 장소로서 사이 공간은 이동권을 저해하는 기술적 관문의 형태로 존치된다. 이동성 부동성이 상충하는 사이 공간은 억압, 통제, 제약 등 모빌리티 자유가 침해되는 특성을 갖는다. (본문 30, 37, 40, 455쪽 참조)

4)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역, 『도덕의 계보』, 아카넷, 2022.

5)로버트 라이시, 안기순 역, 『자본주의를 구하라』, 김영사, 2017.

6)지그문트 바우만, 한상석 역, 『모두스 비벤디』, 후마니타스, 2020.

7)자크 라캉, 권택영 외 3인 역, 『욕망이론』, 문예출판사, 2017.

8)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역, 『존재와 시간』, 까치글방, 1998.

9)하성란, 「광물성의 기록」, 김숨, 『간과 쓸개』, 문학과 지성사, 2011.

10)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 박찬부 역,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18.

11) 토니 주트, 김일년 역,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플래닛, 2011.

12) 최윤영, 최승원, 「자살예방 빛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의 법적 쟁점과 과제」, 행정법연구, 제40호, 사단법인 행정법이론실무학회, 2018.

13) 강동호, 「죽음보다 낯선」, 김숨, 『노란개를 버리러』,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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