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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A PROJECT
by BABAJUNG Feb 11. 2018

BABA PROJECT – 짧은 작별

 

 2017년 11월 9일 18시,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 인천항에서 중국 칭다오로 향하는 ‘위동페리호’에 오른다. 비행기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옆 동네를 열여섯 시간이나 간다고 하니 다들 나를 적잖이 미친놈으로 보는 모양이다. 친구들은 배 타고 간다고 오백만 번이나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9일 공항으로 몇 시에 가?”라고 묻는 멍청이들이다. 한국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가려면 비행기 외에 다른 수단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비행기가 아직 100살밖에 먹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배는 4000살도 넘게 먹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호기롭게 배를 타고 간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영화 ‘황해’나 ‘범죄도시‘를 보고 와서는 내게 배 타고 가는 것을 말리기도 했는데, 사실 나도 영화를 보고 장첸을 마주칠 까봐 내심 두려웠다. 호기는 개뿔, 인터넷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호기를 되찾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비행기가 납치되는 영화를 보고 오면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을 말릴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니 말이다. 열여섯 시간의 항해는 위험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배는 오후 여섯 시에 출발하고 밤이 되면 무려 폭죽놀이를 해준단다. 마치 나의 여행을 알리는 축하포 같은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사람들이 모두 무도회장에 모여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논다고 하는데 그들 사이에 ‘사드(THAAD)’와 같은 것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기대되는 것은 배에서 칭다오 맥주도 판다는 것. 나는 그 날 저녁 배에서 식사를 하며 칭다오를 꼭 먹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선상에 올라가 커피를 한 잔 하며 책을 읽을 것이다. 백육십 시간은 가면 좋을 텐데 열여섯 시간밖에 없다는 것이 그저 아쉽다.


 떠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쳐간다. 이것은 옷가지를 챙기거나 스위스 맥가이버칼을 장만했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거의 마쳐간다는 것이다. 이별이 아니고 작별이다.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 더 있다. 만약 당신의 인간관계를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들과 잠시 작별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사람은 곁에 남고, 아닌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사람으로 남는다. 나는 그럴 생각으로 작별인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확실히 내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여행 도중 바로 돌아올 수도 있을 만큼 소중한 이들이다. 나는 원래 선물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친구들의 생일에도 통속적인 선물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나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에게 선물이란, 생일 같은 형식적인 행사에 “뭘 주어야 하나”라고 고민하며, 상대방이 여자라면 화장품이나 향수, 남자라면 신발이나 지갑 같은 것을 찾아 주며 마치 오래 묵은 과제를 제출하듯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을 봤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면 책을 선물하고, 좋은 향수 냄새를 맡았을 때 그녀에게서 이 향이 풍기길 바란다면 향수를 선물하는 것이지, 꼭 선물을 주어야 할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형식적인 행사에 선물을 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았다. 나는 정말 선물을 받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나를 만나면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였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어떤 직감이 깨어나 “무언가 나에게 주려고 하는구나”라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직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들은 조금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자, 선물”이라며 내게 조심스레 건넨다. 나에게 남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나를 잘 아는 이들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건넨 선물은 모두 내가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면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요즘은 자기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하여, 다른 이성에게 “너라면 생일에 무엇을 받고 싶어”라고 묻는 세상 아니던가. 포털 사이트에 ‘선물’이라고 적으면 검색을 누르기도 전에 ‘여자친구 선물’ ‘생일 선물’ 같은 연관검색어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자기 사람에게 선물하는데 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묻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내게 가족 같은 귀여운 부부는 내 생일날 집으로 초대해서 작은 파티를 열어주고 주섬주섬 선물을 꺼냈다. 잘 포장된 선물박스 안에는 엽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영어로 적힌 가방택, 그리고 짧은 편지가 적힌 노트 한 권과 어렸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연필 열 자루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포털 사이트에 ‘여행 가는 친구 선물’따위의 검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연필의 감성을 아는 이 신혼부부가 내 사람이라는 것이 좋았다. 연필을 깎아 써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도 말이다. 

 나는 ‘킨 포크(KINFOLK)’라는 잡지의 감성을 굉장히 좋아한다.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인데 잡지에 실린 사진과 글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예술적이다. 나는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저 혼자 카페에 와서 글을 쓰기 전 한 번씩 읽으며 즐겼을 뿐이다. 한 친구가 나를 만나고 식사 도중 쑥스럽게 내보인 선물은 바로 ‘킨포크’였다. 이것을 보고는 정말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정말 좋아하는 잡지인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물론 그 친구가 이 사실을 알리 없었다. 친구는 내게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하고 싶었어”라며, 기분 좋은 말도 함께 건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는 잡지가 나와 잘 어울린다니,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킨포크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나 좋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사람을 알 수도 있겠다. 내가 종종 글에서도 언급했고 좋아해서 따르는 작가 오수영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이 이 작가의 영향이 90%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낮에는 노동자로 일 하며 밤에는 글을 사랑하는 이 예술가는 어느 날 나에게 파주 출판단지에 놀러 가자고 했다. 그곳은 자기가 좋아해서 아껴두는 공간으로, 자기 사람에게만 몰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새카만 남자 둘이 출판단지를 견학하고 지혜의 숲을 갔는데 정말이지 굉장한 곳이었다. 천장의 높이가 내 키의 10배는 되어 보였는데, 저 높은 곳의 책은 어떻게 꺼내는지 궁금했다. 그는 나를 조용한 곳에 앉히고는 줄 것이 있다며 주섬주섬 선물을 꺼냈다. 이병률 여행 산문집 ‘끌림’이라는 책과,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에 편지를 빼곡히 적어주었다. 나는 이 작가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여행 중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감성을 다시금 불어넣어 줄 책으로 완벽했으며, 정확히 내가 읽고 싶은 책의 감성이었다. 나는 행복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책을 아주 조금만 읽어보기로 했다. 무슨 맛인지 간만 본다는 것이 너무 맛이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책을 덮어야만 했다, 이것을 아껴두어야만 했다. 

 아직도 선물이 더 남아있다. 여행 가서 정말 보고 싶을 것 같은 귀여운 친구는 내가 여행가서 추울 것이 걱정되었는지 ‘붉은 악마 핫팩’을 무려 열 개나 주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삭발이 잘 어울리는 한 친구 놈은 좋은 모자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정말 인맥관리라는 것을 못하는 사람인데 사실 그것이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나는 나중에 언젠가 꼭 내 일,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인데,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선 인맥관리를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하기 위해선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가끔 선물도 쥐어주며, 안부 연락 같은 것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선 정말 쥐약이다. 아무래도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따위의 말을 복사해 두고,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하루 종일 그것을 수백 명에게 던져대며 ‘작업’을 해대는 짓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온 인사를 귀찮아한다. 자신도 누군가의 전화번호에 있던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하나 대답하지 않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인맥관리는 못 하지만 인간관계는 꽤나 괜찮은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 수백 명에게 같은 말을 복사해서 그것을 던지지 않고, 단 몇 명에게 진심으로 사력을 다해 인사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것을 지키고 싶다. 내 사람들과의 짧은 작별이 거의 마무리되었고 곧 떠날 시간이 가까워온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 친구들과 다시 만나 나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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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했었으며, 현재는 제 삶을 찾는 31살의 여행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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