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다녀온 스위스 여행은 일종의 테스트였다. BABA PROJECT 리허설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이다. BABA PROJECT 아시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몇 가지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일단 배낭의 무게와 실제 유동성. 성인 남성의 몸뚱이만한 배낭을 뒤로 메고 앞으로는 DSLR, GOPRO, 노트북, 스피커 그리고 보조배터리 같은 무게 나가는 장비를 멜 것인데, 과연 장거리 이동 시에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짐작하건대, 배낭 17KG, 앞 가방 8KG 약 25KG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일 것이다. 군 시절 행군 훈련 때 20KG도 무거워서 몰래 솜 같은 것으로 부피를 대신했던 기억에, 차마 포기하기 싫은 카메라나 스피커를 빼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리허설 결과는 좋았다,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유럽의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잘 포장된 길거리, 널찍한 기차 공간과 비교할 것이 안 되겠지만, 과연 어떨지는 직접 가서 느껴봐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과연 내가 저 묵직한 DSLR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미러리스’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더 사야 하는 것일까, 고프로의 배터리는 얼마나 갈 것인가, 영상 제작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며 그것을 매주 할 시간이 있을까, 즉 모든 기록에 관한 의문이었다. 이 의문들 역시 이번 리허설을 통해 대부분 답을 찾아왔다. 나는 엄마와의 여행에서 무거운 DSLR을 들고 다니며 수천 장의 사진을 담아냈다. 그렇게 들고 다니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멋진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여행자로서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듯했다. 또한 BABA PROJECT에서는 이번 여행처럼 무작위로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과 사람들을 담아낼 것이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이 섰다. GOPRO는 생각보다 더욱 편리했다. 약 1시간 30분 정도를 녹화할 수 있으며 예비용 배터리가 하나 더 있어 촬영에 전혀 걱정이 없었다. 스위스에서도 틈만 나면 영상을 찍어댔음에도 불구하고 보조배터리까지 쓸 일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BABA PROJECT 리허설에서 촬영장비를 도난당한 일이 없어, 실제 도난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리고 영원히 의문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나는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라 내 글에 의심과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사진 역시 그러하다. 이번 여행에서 담아낸 수천 장의 사진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며칠을 몰두하여 보정을 마쳤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했다. 그렇게 낳은 내 새끼들, 그렇게 처음으로 보게 된 내 새끼들이 참 예뻐 보였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소중해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에 전부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 눈에만?”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자기의 애완동물 같은 사진을 공적인 공간에 수십 장씩 올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 사랑스러운 새끼들을 공적 공간에 올리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내 눈에만 그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일 뿐, 다른 사람들의 눈엔 그저 지나가는 풍경사진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새끼들을 갤러리에 자랑해놓았으며 대신 누구라도 그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들어와서 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의도를 갖고 보는 것과 의도를 갖지 않아도 보게 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행에서 찍은 모든 사진은 ‘BABAJUNG GALLERY’에 올려둘 것이다.
주 5일제, 나도 보통 일하는 사람들처럼 주 5일제를 도입해볼 생각이다. 월-금이던 수-일이던 아무튼 5일간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2일간 정리할 것들을 정리한다. 이때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작업을 모두 마쳐야 하며, 동시에 다음 경로를 정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책이 문제였다. 나는 포켓북을 여러 권 사서 가지고 다닐까 했지만 아무래도 무게를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패드의 E-BOOK을 사용하기로 했다. 종이의 감성을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배낭여행자는 언제나 무게에 굴복해야만 한다. 정말 미치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에서 도무지 글을 디지털로 읽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작은 책 한 권정도는 애교로 봐주자. 추가적인 지출이 꽤 들었다. 중국 비자를 90일 단수로 신청해 8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침낭을 꽤 쓸만한 것으로 구입하여 8만원이 들었다. 또한, 나는 이따금 음악으로 분위기와 향기를 기억하곤 하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 꼭 스피커를 장만해야 했고 26만원이라는 거금을 부었다. 스위스에서 아주 멋진 맥가이버 나이프를 하나 구입했다. 나는 단지 비영리적인 일을 할 뿐 백수는 아니기에, 명함을 하나 제작했는데 6만원이 들었다. 명함에 재미있는 장난을 살짝 쳐봤는데, 직업에 Changeable 주소에는 Somewhere이라고 적어 넣었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것이 꽤나 마음에 드는 장난이다. 마지막으로 예방접종, 장티푸스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았으며 말라리아는 약 처방을 받았지만 그냥 받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가격도 상당히 나갈뿐더러 챙겨 먹을 자신도 없다. 황열병은 가격이 정말 비싼데, 좀 더 자세히 알고 보니 남미와 아프리카에 갈 때 필수이지, 내가 가는 루트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간염은 항체가 없다는 검사 결과에 따라 곧 파상풍과 함께 접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때마침 인천항에서 중국 칭다오(Qingdao)로 가는 배, 위동페리호가 프로모션 할인 중이다. 저렴한 가격에 해줄 테니 어서 가라고 나를 부추기는 듯하다, 느낌이 좋다. 다음 주 11월 7일 혹은 9일, 출발 날짜가 거의 확정됐다. 이제 정말 갈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