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기 #16 - 2023년 5월 5일
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
어제 새벽 2시에 맥주를 한 캔 먹고 거의 4시가 다 되어 눈을 감았더니 너무 피곤해서 10시 30분까지 늦잠을 좀 잤다. 뭉그적거리며 서둘러 공덕으로 와 사무실 건물에 주차했다. 배가 조금 고픈 것도 같아 먼저 스타벅스로 가서 샌드위치 등 빵 3개와 아.아 벤티 한 잔을 포장으로 받았다. 며칠 전 아는 분께 받은 스타벅스 <커피 2잔에 케익 하나 쿠폰>을 Flex하였는데, 공휴일에 사무실에 나온 나에게 이정도 선물은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는 공덕에 프론트원이라는 공유 사무실에 입주해 있다. 여긴 한 13개 정도 되는 회사가 들어와 있는데 일부 제외하고 전체가 오픈형 공간이다. 그래서 보통은 항상 불이 켜져 있는데, 오늘 내가 사무실로 들어온 11시 30분쯤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그래도 일요일엔 이따금 한두 명씩 있긴 하던데, 어린이날이라 모두 쉬는 모양이다. 불을 켜고 오른쪽 구석 내 자리로 와 앉았다. 창밖은 어두컴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뭔가 뒤숭숭해서, 예열하는 느낌으로 아주 가벼운 글을 쓴다.
이번 주는 근로자의 날(월)과 어린이날(금)이 포함되어 주 3일 근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 5일 전부 출근한 이유는, 물론 해야 할 일이 많아서도 있지만, 그것보단 쉬어야 하는 이유로 무슨무슨 날이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난 스스로 근로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유급휴일, 유급휴가 등 쉬어도 근로 수당이 나온다는 개념은 내게 사치다. 결국 그 수당이 나오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실컷 놀고 스스로에게 돈 달라고 하는 꼴이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그 시간에 제안서를 쓰던 계획서를 쓰던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유급휴일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근로자의 날은 쉬는 날이 아니라, 근로자가 쉴 수 있게 백업해 주어야 하는 날인 셈이다.
둘째로 난 어린이가 아니고, 키우는 어린이도 없다. 누가 나와 함께 놀아주길 바라는 어린이가 아니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어린이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왜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셋째로 -이건 공휴일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공휴일이라고 물리적인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공휴일도 평일과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생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 의식적으로 공휴일엔 쉬어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과정이 문득 두렵다. 공휴일이 끼어있는 주는 3일만 일해도 괜찮은 걸까? 공휴일만큼 근로자의 급여가 깎이는 것도 아니고 급여일이 밀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 수익모델이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은 우리 회사는 쉬는 날 생산성이 낮아진다. 매 월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같은데 생산성이 낮은 일 수가 많아진다는 건 매우 리스크가 크다. 공휴일이 아무리 많이 끼어 있어도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른다. 공휴일은 내게 밥 먹여 주지 않는다.
평일엔 어수선하고 회의도 있고 미팅도 있고 컨펌해 주어야 할 것도 많아 생산적인 일은 잘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쉬는 날 사무실에 나오면 조용하고 집중이 잘 된다. 오히려 아늑하고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지금부터 다음 주 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