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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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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Nov 22. 2021

운동을 했더니 삶의 의지가 딸려왔다.

[퇴사일기#17] 초보 운동러의 고백

 아주 큰 마음먹고 시작했던 필라테스 개인 수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개인 수업을 연장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금액적 부담이 있어서 잠시 생각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문득 직장을 다니던 시절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고민 없이 카드를 긁었겠지요. 그때는 왜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물음의 대답을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곧 이유를 깨닫고 조용히 대답을 삼켰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의 저는 삶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운동으로 건강과 삶의 활력을 얻는 것보다 당장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손쉬운 쪽을 선택했습니다. 술이나 폭식과 같은 달콤하고 편한 일이요.


 운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인데다가 에너지가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퇴근 후 피로에 찌든 채 선택하기에는 벅찼습니다.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겁니다.







 직장인 분들 중에 체력이 안 돼서 운동 못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텐데, 저는 그 부분 120퍼센트 이해합니다. 회사는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듭니다. 야근을 안 해도 근무 시간을 버티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 소모입니다.


 게다가 스트레스는 좀 받나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의 피로가 합쳐지면 자연스레 자극적인 음식이 땡기고 늘어집니다. 체중은 점점 불고 움직이는 게 힘들어집니다. 주말에도 계속 침대에 누워있게 되고 숨 쉬는 것 조차 귀찮습니다. 원래 갖고 있던 체력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루트입니다


 저의 경우, 사무직이라 맨날 앉아서 일하다 보니 갖고 있던 근육도 사라지고 거북목이 심해졌습니다. 목과 허리가 무너지면서 모든 자세가 망가졌습니다. 눕는 것만 편하고 모든 게 불편해졌습니다.


 퇴근 후엔 입맛이 없어서 맥주로 끼니를 때우거나 대충 시켜 먹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정리할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설거지가 세상에서 젤 힘든 일이 됩니다.


 또 심각한 보상 심리가 발생하여 주말에는 내내 잠만 잡니다. 분명 충분한 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어째서인지 피곤합니다. 체력은 점점 더 약해지고 활력이 뭔지 까먹은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퇴근 후에도 운동을 하려면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 기초 체력이 부재합니다. 그러니 운동에 대한 의지가 생길 리 만무하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엄청난 의지 또는 쉼표가 필요합니다. 저는 쉼표를 택했습니다. 퇴사 후 쉬면서 체력을 키우기로 마음 먹으면서 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요즘은 '진즉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악순환이 시작되기 전에 기초 체력을 만들어놨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겁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꼭 얘기합니다. 지금부터 운동하라고.


 처음 필라테스를 선생님이 제 체형을 진단해주셨을 때, 당장의 심각한 문제는 없지만 안 좋아지는 길에 들어섰다고 했습니다. 모든 부분이 조금씩은 삐그덕 거리는 몸이었달까요. 사실 그즈음 스스로도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슴과 등 근육이 약해져서 똑바로 앉는 게 힘들었고, 거북목이 진행되며 뒷목이 아프고 어깨가 앞쪽으로 말려갔습니다. 골반도 약간 틀어져있었습니다. 두 다리가 땅을 지지하는 게 힘드니 자꾸 다리를 꼬고 앉아서 생긴 비대칭이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문제를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안 좋아지는 체력을 외면하고 불편해지는 몸을 방치해왔던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 생긴 겁니다.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아는 것만으로도 더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운동을 시작하고서 제 생활은 꽤 변했습니다.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들여 운동하는 건데 기왕이면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먹는 것부터 정성스레!
 우선 먹는 것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운동 후에는 근육 생성을 위해 단백질 음료를 챙겨 먹고, 자연스레 술을 줄였습니다. 체내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근육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끼니를 먹을 때도 건강한 식재료를 선택하며 영양적 균형을 따지게 됩니다. 음식을 만들어먹고 설거지 등 정리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배달음식을 조금 멀리하게 됐습니다.

2. 올바른 자세의 정착!
 평소 자세(걸음걸이, 의자에 앉았을 때 등)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코어 근육에 계속 신경을 쓰며 바른 자세를 유지합니다. 또한 만들어놓은 근육을 잃고 싶지 않아서(?) 틈틈이 근력 운동을 합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걷고, 계단이 나타나면 '운동하자!'는 생각으로 탑니다. 더 이상 다리를 꼬고 앉지 않습니다. 다리에 근력이 붙으면서 자연스레 두 다리를 지탱하고 바르게 앉을 수 있었습니다.

3. 잠이 보약이다!
 마지막 변화는 숙면입니다. 예민한 기질이라 잠에 잘 들지도 않고, 자도 깊이 못 자는 편인데 운동을 한 날은 깊이 잠들 수 있습니다. 정신적 피로감과 육체적 피로감을 따졌을 때 육체적 피로감은 숙면에 도움을 주는 편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너무 피곤한 날에 되려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반면 요즘엔 스트레스도 적고 운동 후 육체가 피로하니 수면의 질이 향상된 기분이 듭니다.


 초반에 얘기한 '직장을 다닐 때 금전적으로 여유로우면서도 왜 운동을 안 했는가'하는 문제는 제 삶의 의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당연히 미래에 좋을 걸 생각해서 지금 운동을 선택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쳇바퀴 굴러가 듯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속에서 하루 1시간도 스스로를 돌보고 가꾸는 것이 벅찼습니다. 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 돈에 관계없이 제가 운동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은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운동 좋다는 말은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운동 후 좋아진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늘 병원에서 말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삶도 못 살았던 겁니다.


 기본도 못 하는데 어떻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나요. 물에 뜨는 것도 못하는 사람한테 자유형을 하라고 강요했으니 당연히 의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퇴사하고 운동하라는 말은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처해진 환경이 다르고 상황적 여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사일로 도저히 시간이 없다면 의지를 키우는 방법을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운동을 등록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갑니다. 평소에 배워보고 싶었던 운동을 선택하면, 흥미가 생겨서라도 운동을 합니다.


 사실 저는 퇴사 후 시간이 있어도 의지가 매우 박약해서 비싸고 해보고 싶은 운동을 선택한 케이스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건강하고 활력 가득한 삶을 꿈꿀 기력조차 없었던 그 시절의 제가 안쓰럽습니다. 요즘은 운동을 하고 나를 돌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 있습니다. 운동을 했더니 삶의 의지가 딸려왔다고 해야 할까요.


 일주일에 1번, 또는 한 달에 1번이라도 나를 위해 땀 흘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순간의 느낌을 잘 기억해서 앞으로도 운동하는 삶을 이어가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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