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했던 날을 기억한 날

열일곱 번째 편지_과거의 이야기

by 아기도토리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있었어. 현관을 열고 주방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면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식탁 앞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었지. 내가 왔다는 걸 모르는 건지 집중하느라 바쁜 건지.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어.


“나 왔어.”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어.


“왔니.”


아버지는 책을 덮고 일어나 불 앞에 서서 국을 데우고 동그란 그릇에 밥을 담았어. 그동안 나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어. 보글거리는 비누 거품을 바라보다 찬물에 손을 헹구고, 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아버지와 나는 작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았어. 오늘 학교에서 어땠니? 잘 지냈니? 친구들이랑은 잘 놀았니? 뭘 배웠니?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이 아버지는 묵묵히 젓가락을 들었어. 아버지가 드시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숟가락을 들었지.


“무슨 공부해?”


내가 물었어. 아버지는 밥을 먹는 와중에도 공부에 열중이었거든. 두껍고 커다란 책에 내 시선이 닿자 아버지는 우물우물 밥을 씹다가 말했어.


“자격증 시험.”

“무슨 자격증인데?”

“직업 상담사 자격증.”


깊숙이 팬 눈주름. 거칠고 차가운 손.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국을 후룩후룩 마셨어. 아버지가 만든 따뜻한 달걀국과 달걀 프라이, 그리고 김치 몇 조각. 아버지는 간을 잘 맞추지 못하는지 국이 싱거웠어.

있지, 앤.

나는 보통날의 아버지를 생각해. 네모난 필름에 담긴 듯 생생한 기억을 종종 떠올리곤 해. 그날의 엷은 햇살과 부엌을 덮는 온온한 공기. 그리고 유리창에 가늘게 맺힌 수증기의 불투명한 냄새를.

하얗게 세어 버린 필름처럼. 텅 빈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