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사랑하면서 미워한 날

열아홉 번째 편지

by 아기도토리


“얼른 구급차 불러. 얼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 앞에 쓰러진 어머니가 보였어. 어머니는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고, 괴롭고 힘들어 보였어.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서 있다가 허겁지겁 수화기를 들었어.

바글바글 끓는 가루약은 물에 녹여 먹는 게 올바른 섭취 방법이었어. 하지만 어머니는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가루약만 한 번에 먹어 버린 거였어. 그래서 어머니의 배 속에서 가루약이 파삭파삭 소리를 내며 끓어 올라, 어머니는 이도 저도 못 하고 쓰러진 거였어. 나는 다 쓴 가루약 봉지를 망연히 바라보다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어.

구급차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신음하는 어머니를 감싸 안고 등을 쓸어주었어. 기다리는 내내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것만 같았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이 귀를 찔렀어. 절차에 따라 서류를 작성한 뒤, 어머니는 간단한 검사를 받았어. 검사가 모두 끝나자, 우리는 의사를 만나기 위해 대기 의자에 앉아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어.

엉엉 우는 아이. 소리 지르는 여자. 간호사에게 삿대질하며 화를 내는 남자.

나는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그리고 얼마 뒤 어머니의 이름이 불려서 어머니를 데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어.


“많이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검사 뒤에 약을 좀 드셔서 많이 진정되었어요.”


의사가 말했어.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등을 둥그렇게 굽히고 바닥만 바라보았지. 나는 그 옆에 서서 어머니의 어깨를 쓸어내렸어.


“처방해 드린 약을 드시면 되고, 가셔도 좋습니다.”


의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진료실을 나섰어. 어머니는 힘이 쑥 빠졌는지 주춤거리며 나를 따랐어. 나는 어머니가 혹여 넘어질까 걱정되어 어머니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어. 계산대에서 며칠 분의 알약을 받고 값을 치른 뒤 우리는 밤의 응급실을 나섰어.


택시를 타고 컴컴한 도로를 달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를 흘끔 바라보았어. 어두워서 어머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아파 보였고, 화가 난 듯 슬프고 끔찍한 듯 보였어.

그렇게 늦은 밤이 마무리되었어.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오후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 방에 이불을 깐 뒤 어머니가 주무실 수 있도록 불을 끄고 방을 나왔어.





언젠가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기들을 좋아한 적이 있었어. 아버지 방에는 상자 쓰레기를 가득가득 쌓아 놓고 어머니는 자기 방에 들어가 텔레비전만 보곤 했어. 번쩍거리는 화면을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다가, 아기들이 까르르 웃으면 그제야 어머니도 웃었어.

어머니는 아버지 방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어. 밤에도 낮에도 어두운 그 방을 어머니는 무척 무서워했어. 어떨 때는 자기가 쌓아 놓은 상자 쓰레기가 귀신이라고 믿기도 했어.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어.


“봐. 귀신 아니잖아. 그렇지?”


하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서 있다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헐레벌떡 자기 방으로 달려갔어.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 어머니는 개수대 앞에 서서 그릇을 헹구고 있었어. 주방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귓가에 차갑게 내려앉는 것 같았어. 어머니의 굽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어.


“이제부턴 너희가 엄마를 돌봐야 해.”


언젠가 이모들이 집에 찾아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나와 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마치, 어머니는 남편을 잃었지만 나와 언니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기들처럼 내가 아기였다면.

그랬다면 엄마가 날 좋아해 주었을까.

그저 있는 그대로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나는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약 봉투를 바라보았어. 기한이 훌쩍 지난, 언젠가 응급실에서 받았던 며칠 분의 약 봉투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