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편지
“언니마저 나한테 그럴 줄 몰랐어. 언니까지 날 싫어하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나한텐 언니밖에 없어. 언니밖에 없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서 흑흑 울었어. 눈물로 흐려진 시야 너머로 언니의 화난 얼굴이 보였어. 나는 외투를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섰어.
늦은 밤. 캄캄한 하늘에는 밝은 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어. 날이 풀려서 낮엔 따뜻했지만, 밤에는 여전히 추워서 바람이 쌩쌩 불었어. 얇은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나는 터벅터벅 걸었어. 공원 입구에, 얼마 전 강아지를 만났던 벤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 나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어.
언니와 싸운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앤, 사실 나는 언니에게 미안했어. 언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 우울과 아픔 때문에 언니에게 짜증을 내고 만 거니까.
어릴 적, 언니가 감기에 걸리면 나는 언니에게 옮아서 더 심하게 감기를 앓곤 했어. 밤새도록 열이 펄펄 끓어 잠도 못 자고 웩웩 토를 하고, 온몸에 힘이 쑥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지. 그러다 해열제를 먹고 겨우 잠이 들곤 했어.
꿈속에서, 커다란 바위가 자꾸만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어. 하늘을 가득 덮을 것만 같이 커다란 바위. 모든 것을 짓눌러 버릴 것만 같은.
나는 계속 도망쳤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나도 절뚝거리면서 달렸어. 바위에 깔려 죽는 게 무서워서 엉엉 울면서. 눈물 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것도 모른 채, 바위를 피해 헉헉거리며 달렸어. 어느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을 때쯤 나는 잠에서 깼어.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잠잠하고 고요한 방 안. 바위 같은 건 없는 언니와 나의 방. 언니는 내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어.
나는 문득 죽음이 두려워졌어. 숨이 끊기면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뜨거웠던 체온이 차갑게 식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곤히 잠든 언니를 바라보다 손등으로 언니의 뺨을 조심스레 만져 보았어. 언니의 얼굴은 부드러웠고 언니는 내가 얼굴을 만지는 것도 모른 채 잠에 푹 빠져 있었어. 나는 언니의 손을 조심스레 움켜쥐었어. 보일러 때문에 더워서 송골송골 땀이 맺힌 내 손을, 언니의 손에 포갰어. 그리고는 언니 옆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어.
집으로 돌아와 깨끗이 씻고서 나는 언니에게 갔어. 언니는 좁은 방 안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있었어. 이불이 스륵스륵 움직여서 나는 언니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어.
“언니, 이불 들춰봐도 돼?”
언니는 대답이 없었어. 조심히 이불을 들어 올리자 울어서 얼굴이 빨개진 언니가 그 안에 있었어. 나는 언니를 일으켜 언니의 몸을 꼭 껴안았어.
“미안해, 언니. 내가 잘못했어. 언니에게 나쁜 말 해서 미안해.”
언니와 나는 서로를 끌어안고서 엉엉 울었어. 한참을 울다가 우리는 서로의 빨개진 얼굴을 바라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