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기를 읽은 날

스물세 번째 편지

by 아기도토리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어. 가끔 그런 때가 있잖아.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 말이야. 내 옆에 누운 언니는 쌕쌕 숨을 내쉬며 곤히 자고 있었어. 나는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어.

깜깜한 거실에 전등을 켜고 의자에 앉았어.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이라도 읽다 자려는 생각이었지.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책을 읽을까? 아니면 심오한 소설책을 읽을까? 곰곰 고민하다가 나는 소설책이 가득 꽂힌 책장 앞에 섰어. 그런데 들쭉날쭉한 소설책 옆에, 어릴 적 쓴 일기장을 모아 둔 코너가 보이는 거야.


“오랜만이다.”


나는 일기장 하나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 내었어.

커다랗고 삐뚤빼뚤한 글씨. 고양이와 강아지 얼굴을 그려 넣은 일기장. ‘오늘은 즐거운 하루였다. 재미있었다’ 같은 문장들을 보니, 방학 숙제 때문에 한 번에 몰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여덟 살, 아홉 살, 그리고 열 살.

어릴 적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뭘 좋아했고, 뭘 싫어했을까?


어린 나는 멋진 어른이 되리라 생각했을까. 어른이 된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했을까.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그리며, 설레어 잠 못 들기도 했을까.

나는 의자에 앉아 일기장을 넘겨 보았어. 글 쓰는 게 재미있다. 멋진 소설을 한 권 쓰고 싶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쓴, 어린 나의 문장들을 읽었어. 나는 어린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보았어.

있잖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멋진 어른은 아니야. 그렇지만 여전히 글 쓰는 걸 좋아해. 글을 쓸 때면 행복해지고 힘든 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 무엇보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줄 때면 힘이 나곤 해.


“뭐 해?”


언니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어. 언니는 잠옷 차림에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서 눈을 비비며 내 곁으로 다가왔어.


“깼어? 내가 나가면서 깨웠나 보다.”


언니는 고개를 저었어.


“아냐. 괜찮아. 옅게 자서 그래. 그리고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 늦게 자도 괜찮아.”

언니는 주방에서 차를 우렸어. 파랗게 타오르는 불 앞에 선 언니. 언니의 조그만 등. 평온하고 따스한 레몬밤 향이 거실을 가득 채웠어. 열어둔 창으로 여름 바람이 불었어. 하얀색 커튼이 미지근한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어.


“따뜻하다.”

“응.”

“언니가 끓인 차, 정말 맛있어.”


언니와 나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호록호록 차를 마셨어.


“뭐 보고 있었어?”


언니가 물었어. 나는 내가 보던 낡은 일기장을 언니에게 보여주었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처럼 어쩐지 부끄러웠지만.


“어릴 때 쓴 일기. 방학 숙제로 쓴 거라, 내용은 무척 이상하지만.”


언니는 쿡쿡 웃었어.


“너,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걸 참 좋아했잖아. 친구들에게 곧잘 편지도 쓰고.”

“그랬었나.”

“소설을 써서 보여주기도 하고.”


언니는 차를 한 모금 길게 마시고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


“언니, 피곤하잖아. 어서 가서 자자.”

“응. 조금만 더 있다가.”


언니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가는, 창 너머의 새콤한 새벽하늘. 우리는 그 여름밤에 뜨거운 레몬밤을 마시며 일기를 읽었어. 귀여운 캐릭터를 그려 넣은 일기를 한참 읽다가 우리는 식탁에 엎드리고서 쿨쿨 잠에 빠져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