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편지
“어떤 하루를 보냈어요?”
상담사 선생님이 물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조용한 상담실 안에서 나는 고개를 들었어. 선생님은 미지근한 음료 한 잔을 내게 건넸어. 나는 내 앞에 놓인 복숭아 차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어.
“새로운 일이 많았어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어. 노릇노릇한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비스듬하게 들어와 바닥에 내려앉았고, 선생님에게서 포근한 향수 냄새가 났어. 오래된 책 냄새와 달콤한 복숭아 차 냄새. 아이들의 땀 냄새, 그리고 생글생글 살아있는 사람의 살 냄새.
“새로운 일. 좋은 일이었나요?”
선생님이 나를 보며 물었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어.
“평범한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어쩌면 저에겐 특별한 일일 수도 있겠어요.”
선생님은 내 앞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사람들을 만났어요. 알고 지내던 사람과 처음 만난 새 인연들을 말이에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사람을요.”
나는 복숭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계속했어.
“종종 실수도 했어요. 그래서 가끔은 우울했지만, 따뜻한 사람들은 저를 보듬어 주었어요. 평온한 아침이면 산책을 했어요. 아침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으면서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어. 나는 또 말했어.
“제가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는 저에 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때문에 울기도 하고, 울고 또 울다가 결국엔 일어나서 꾸역꾸역 밥을 먹기도 하고,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가끔은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도, 또 가끔은…… 가끔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웃기도 했어요.”
나는 말을 마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어.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 선생님이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어.
“고생했어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