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편지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한 뒤에 나와 언니는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 언니는 책을 두 손에 들고 열심히 읽었고, 나는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언니를 바라보았어. 책에 집중하는 언니를, 재미있는 부분이 나왔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언니를, 그리고 책을 탁 소리 나게 덮는 언니를 말이야.
나는 빙그레 웃었어.
“책 재밌어?”
“응. 네 것도 빌려다 줄까?”
“그럼 좋지. 나도 읽고 싶어.”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는 홍차를 단숨에 들이켰지.
작은 쪽지에 책 제목을 적었어. 꾹꾹 눌러 쓴 연필 자국을 흘깃 바라보다 나는 언니에게 쪽지를 건넸어. 바지 주머니에 쪽지를 넣고 현관으로 걸어나는 언니를 따라 나는 신발장 앞에 섰어.
신발장 앞 전신 거울에 언니와 나의 모습이 나란히 비쳤어. 언니는 신발을 다 신고 거울 속의 나에게 말했어.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없으면 전화할게.”
“응. 잘 다녀와, 언니.”
언니는 손을 흔들고 집을 나섰어. 현관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
언니는 그렇게 매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어. 하루는 내 책, 또 하루는 언니 책. 어느 때는 무겁지도 않은지 둘이서 읽을 책을 잔뜩 가지고 왔지.
도서관에 가본 지 오래되어 도서관의 정경이 가물가물했어. 도서관이 어땠더라. 둥그런 탁자 앞에 둘러앉은 아이들.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어른들과 학생들. 낡은 책 냄새가 어땠더라. 퀴퀴했던가, 구수했던가.
앤.
너는 도서관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니?
“다음에 나도 같이 갈래.”
언니에게 불쑥 말하자 언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어.
“그래? 그럼 나야 좋지.”
언니가 빙그레 웃었어.
주말. 언니와 도서관에 가기로 했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이었어. 언니와 나는 아침을 먹고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출발하기로 했어. 마을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있는 풀숲.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작은 도서관.
버스를 타고 싱그러운 여름 향기를 맡으면서 나와 언니는 도서관으로 향했어.
주말이라 그런지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았어.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도 들리고, 부모 손을 잡고서 깡충거리는 어린아이들도 보였지. 그 사이에서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어. 책장 곁에 쭈그려 앉아 책을 읽고, 사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나는 언니와 함께 문학 코너로 향했어.
“무슨 책을 읽을 거야?”
나는 언니에게 속닥속닥 물었어. 언니는 음, 하고 잠깐 생각하더니 금방 대답했어.
“프랑스 문학.”
언니는 프랑스 문학이 주르륵 꽂힌 책장으로 다가가 책을 꺼냈어.
“프랑스 문학.”
나는 언니의 말을 중얼거리며 다른 쪽 책장으로 향했어. 수많은 책. 들어 본 작가 이름과 모르는 이름들. 언젠가 본 적 있는 제목과 표지, 그리고 작가의 사진들.
나는 책 한 권을 꺼내 펼쳐 보았어. 많은 사람의 손을 탔는지 낡고 해진 책 표지. 손때 묻은 누런 종이.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자 구수하면서도 퀴퀴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책 향기가 났어.
우리는 책을 잔뜩 빌린 뒤 책 이야기를 하며 도서관 계단을 내려갔어. 한참을 재잘재잘 즐겁게 떠들다가 함께 버스에 올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