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아버지의 방을 청소하기로 했어. 하루 만에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언니와 날을 잡았어. 매주 토요일 아침에는 꼭 아버지 방을 청소하기로 약속했어.
상자 쓰레기로 가득하고 군데군데 먼지가 쌓인 어둑한 방. 몇 달간 세탁하지 않아 더러워진 커튼을 걷자 햇볕 너머로 풀풀 날리는 먼지가 보였어. 나와 언니는 마스크를 쓰고, 버릴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어.
오래된 옷장에는 아버지의 옷이 들어 있었어. 낡은 정장 재킷과 누레진 와이셔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줄무늬 넥타이와 늘어진 검정 양말들.
우리는 쓰레기로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앉아서 낡은 옷을 버리고, 남은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어. 하얀 페인트로 벽지를 칠하고 바닥에 카펫을 깔았어. 쓰레기를 몽땅 버려서인지 아버지의 방은 휑했어. 텅 빈 것 같았어.
언제부터 이렇게 어두웠던 걸까. 언제부터 마음 한편에 상처가 생겼던 걸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생긴 상처는 내 마음에 천천히 스며들었던 거야.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도 모르게 말이야. 그리고 그 상처는 마치 작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심장 깊숙한 곳을 파고들어, 여린 살점을 비틀고 점점 숨을 조여 오는 거야.
한가운데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언니를 나는 바라보았어. 언니는 삐릭삐릭 소리를 내며 전구를 갈고, 목장갑을 낀 손을 툭툭 털었어.
“이제 불 켜 볼래?”
나는 언니의 말대로 스위치를 눌러 보았어. 스위치를 누르자 반짝, 하고 방에 불이 들어왔어. 환하고 따뜻한 빛이 방 안을 비췄어.
앤.
환한 전등이 아버지의 방을 비출 때,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무척 아팠다는 것. 나도 모르는 새 스며든 아픔에 내 온몸을 내맡겼다는 것.
옷장 앞에 서서 넥타이를 풀던 아버지의 모습. 늦은 밤, 방에 불을 켜고 책을 읽던 아버지. 밤중에 거실을 지날 때 들려오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리. 방 안에서 이야기하던 두 사람의 목소리.
나와 언니는 바닥에 나란히 앉아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댔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떠올리면서, 전보다는 따스하게, 어렴풋이 웃으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