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리워한 날

열여섯 번째 편지_과거의 이야기

by 아기도토리


장례식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와 언니와 어머니는 짐을 챙겨 택시에 올랐어. 날이 맑았어. 며칠간 주룩주룩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새파란 하늘과 따뜻한 봄볕이 우리를 맞아 주었어. 택시는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느릿느릿 달렸어.

며칠 만에 돌아온 집. 현관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자 차갑고 꿉꿉한 냄새가 코를 찔렀어. 창을 열고 따뜻한 봄바람을 맞았어. 창 곁에서 찌르르 우는 새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웃는 소리도, 옆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도, 달그락거리며 늦은 점심을 먹는 소리도 들렸지.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짐을 풀었어. 아버지 방에 영정을 내려놓고 조의금을 담은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어.

흐트러진 이불. 반쯤 읽은 책 몇 권이 펼쳐진 채 바닥에 놓여 있었고, 개수대에는 그릇과 접시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어. 먹다 만 김치찌개 냄비. 밥이 눌어붙은 주걱. 노란색 고지서들.

그 어수선한 집안에서, 아버지가 쓰던 침대만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어.


언제 넌 건지 모를 빨래들이 건조대에 걸려 있었어. 그중에 아버지 속옷이 있어서, 나는, 아버지는 이제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어. 아버지의 옷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아버지만 없었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얼마 전만 해도 여기에, 이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며칠 전만 해도 이 옷을 쓰던 사람이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했는데.

언니는 쌀을 씻어 밥을 지었고, 나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어. 접시에 옮기지도 않고 반찬통째 바닥에 내려놓았어. 밥은 덜 익어 꼬들꼬들했고, 반찬은 냉장고에 오래 두어 눅눅했어.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보내준 시금치 무침과 달걀 장조림.

우리는 어수선한 집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어.

셋이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