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참기

by 남정은

사람은 자기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

뻔히 합리화인 걸 알면서도 끝내 자신을 지키려고.

이런 사람에게 거짓말을 앗아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하루에 수십 번씩 상처를 받을 것이다.

한번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사실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끔찍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속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구나.

사람이 싫어지자 나도 싫어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니까.

내 안에도 남에게 들키기 싫은 본심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제 미움에 시달리다 다다른 곳은 놀랍게도 거짓말의 위대함이었다.

거짓말도 힘이 든다.

속마음을 참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참말을 할 때보다 훨씬 힘이 든다.

행여 내 기분이 나쁘더라도

남의 기분은 함부로 망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겉꾸림이 나왔다면

그것을 어떻게 경멸하겠는가.

애를 써서 거짓말을 지어낸 마음을

역겨워 하기 보다 고마워 하는 게 마땅한 태도 아닐까.

애를 쓰다, 신경 쓰다, 마음 쓰다.

난 이런 말이 한국어에 있어서 참 좋다.

근육에 힘줄이 솟을 정도로 힘을 쓰는 모습을

마음에 겹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절한 말 한 마디가 단지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담아낸다.

한 번은 편의점에 갔다가 계산원이 내 앞에서 대놓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쉰 적이 있다.

편의점 앱 기능을 잘 모르는 계산원의 미숙함으로 계산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내가 반품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나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봤기에 실수 자체는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것도 당사자보다 점장님의 과오라고 여겼다.

그런데 계산원은 "그러게 왜 그걸 써야지고…"라는 말까지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포스기를 두드렸다.

계산원 입장에서, 그래, 괜히 골치 아픈 일이 생겨 짜증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다른 곳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한숨을 몇 번 봤다.

당신이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고 신경질난다는 뜻이 잠뿍 들어 있는 그런 한숨.

딴에는 할 말을 삼키고 한숨으로 대신했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여려서 겨우 촛불을 꺼뜨릴만한 숨에도 다칠 수 있다.

그걸 안다면 한숨 정도는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겨우 한숨이다.

딱 한숨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숨인가.

내 기분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힘들다. 그 말은 분명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을 챙기려는 그 마음은 진심 아닌가.

거짓말의 동기가 진심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암묵적으로 약속된 거짓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워졌다.

때로는 친절이 좀 작위적이고 웃음이 그이의 얼굴에서 겉도는 것 같더라도

섣불리 그를 비웃을 수 없었다.

말 자체의 진실과 그 말이 나온 배경이 담고 있는 진실 중 무엇을 고를지는 내 의지에 달렸으니까.

나 또한 가식이라는 겉껍질이 없었다면 얼마나 부끄러웠을지 새삼 안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의 추레한 속내는 나만 알고 있을 테니 부디 남들은 내 겉만 봐 주었으면 좋겠다.

겉이 속보다 못할 건 뭔가. 내가 안간힘을 만들어낸 겉인데.

앞으로도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살 것이다.

남을 다치게 할 만한 속은 절대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산봉우리는 첩첩이 모여 절경을 이루고

파도는 겹겹이 포개져 바다의 깊이를 더한다.

사람의 마음 또한 여러 겹이라는 명목으로 나무랄 순 없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남의 시대, 나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