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 위너 (2017, 노라 트메이)

씨앗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갈 수 있기를

by 베일


과거 이슬람 문화권의 중동 국가에 존재하는 ‘명예 살인’이라는 관습에 대한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 다. 사실 명예 살인이라는 개념은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존중할 수 없는 반윤리적인 문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배웠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명예 살인’을 단지 막연하게 개념으로 배웠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 체적인 내용이 담긴 기사, 즉 이야기로 들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친 오빠에게 성폭행 당한 여동생이 품행이 단정치 못하여 친오빠를 유혹했다는 죄명으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사 건. 약혼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15살짜리 딸을 아버지가 불태워 죽인 사건 등 나와 같은 시대에 살 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 등에 서 아직도 공공연히 행해지는 여성 할례. 그리고 도덕경찰이라는 남자들이 길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보기에 비도 덕적인 차림의 여자가 있으면 채찍질을 해대는 유튜브 영상까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채찍질을 당하는 여성과 여성의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며 깔깔대는 주변 남자들의 모습 등 이러한 중동 국가에서 참혹한 여성들 의 모습들은 내게 피하고 싶을만큼 잔인하고 화가 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억압 사 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리 보고 싶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현실이기에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필요한 사회
: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이지만 여성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 땅


<브레드 위너>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파르바나라는 소녀가 가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도덕경찰’ 이라 불리는 남자들이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자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을 단속하고, 소리를 조 금 크게 낸 여자아이에게 달려와 폭력적으로 위협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소녀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순탄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잃은 파르바나의 아버지는 시장 바닥 한 켠에서 잡다한 물건을 팔고 글을 대신 읽고 써 주며 돈을 벌어 방한칸 작은 집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집안에 다른 남자 어른이 없는 관계로 딸인 파 르바나는 시장에서 아버지를 돕고 있다. 그러던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버지는 교도소로 연행되게 되고 집에 생 계를 꾸리는 가장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게 된다. 남성없이는 외출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파르바 나의 가족은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 중 유일한 남자인 남동생 자키는 아직 너무 어리고 파 르바나의 어머니는 남편을 찾으려고 외출을 했다가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해 앓아 눕게 된다. 파르바나 혼자서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나가 보고자 하지만 혼자서는 물을 양동이에 마음 편히 길어 오는것 도, 쌀 몇 줌 사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파르바나는 여자로서는 생계를 이어나갈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소년의 모습이 된다. 파르바나는 소년의 모습이 된 이후 아버지처럼 시장에서 글을 대신 읽고 써주거나 물건들을 팔며 생계를 꾸린다. 소년이 된 파르바나는 친구와 마을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고 일을 해서 돈 을 벌 수도 있었고, 여자에게 물건을 팔지 않던 상인들에게 식량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대 신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남자가 된 파르바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교도소에 끌려간 아버지를 찾기 위 한 모험을 시작한다.


파르바나와 술레이만 : 커다란 코끼리 이야기


이 작품은 액자식 구조로 큰 맥락은 파르바나가 가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파르바나가 동생 자키에게 들려주는 상상 속 이야기와 교차되는 액자식 구성을 갖고 있다. 파르바나가 동생에게, 친구 샤우지아에 게 그리고 자신에게 들려주는 ‘커다란 코끼리 이야기’는 바깥 세상인 파르바나의 이야기와는 다른 톤앤매너와 스 타일로 그려지고 있다. 종이 인형극을 연상시키는 연출과 텍스쳐가 상상 속 이야기에 좀 더 신화적이고 판타지적 인 특성을 부여한다. 개인적으로 상상 속 이야기의 판타지적인 연출과 미술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며 재미있었다. 이러한 파르바나의 상상 속 이야기는 관객에게, 파르바나에게도 참혹하기 그지 없는 바깥 세상에서의 한줄기 오아 시스같은 역할을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힘겹게 투쟁하듯 살아가는 파르바나에게 현실을 잠시 피할 수 있는 그늘 이 되기도 하고 또 파르바나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는 목표처럼, 마을에 씨앗을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소년이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파르바나 자신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커다란 코끼리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한 소년인데 후반에 가서 파르바나는 소년의 이름을 오빠의 이름인 술레이만 으로 정한다. 술레이만은 영화에서 등장하지는 않으나 등장인물들의 말을 통해 파르바나를 많이 닮은 파르바나의





죽은 오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커다란 코끼리 이야기' 후반부에서 소년은 죽은 오빠 술레이만으로, 또 마지막으 로는 파르바나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 파르바나의 필사적인 모습과 술레이만의 모험이 절정에 이르는 후반부는 사 운드와 합쳐지며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총격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아빠를 찾아서 고분분투하는 파 르바나와 엘리펀트킹과 대치하는 술레이만의 모습이 교차 편집되는 부분에서 파르바나가 술레이만을 응원하는 모 습이 결국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야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아버지의 말처럼 파르바나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말했던 해변에서 만나


영화 <브레드 위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실사 영화가 할 수 없는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참혹 한 현실의 이야기를 단순하지만 강렬한 그림체를 통해 전달함으로서 실사로 만들었다면 주지 못했을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납득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현실이었다면 온 가 족이 탈레반에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파르바나와 가족이 살아남 는 엔딩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물론 파르바나와 가족들이 결말 이후 순탄한 삶이 예상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 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으며 파르바나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파르바나가 씨앗 을 가지고 마을로 무사히 돌아갈수 있기를 말이다.


앞서 파르바나는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며 친구 샤우지아와 헤어지게 된다. 샤우지아는 파르바나와 같은 학교 출신 으로 파르바나처럼 남장을 하고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점으로 인해 급격히 가까워지며 함께 여러 곳을 다 니며 돈을 벌기도 하고 함께 미래를 그리며 꿈을 나누기도 한다. 떠난다는 파르바나의 말에 돌아서는 샤우지아에 게 파르바나는 샤우지아가 지니고 다니는 엽서에 그려진 해변에서 20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이 지 켜지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나를 기대하게 해준다. 20년 후에는 샤우지아와 파르바나가 델로와르와 오테시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도 자유로운 모습으로 해변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말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참혹한 현실 묘사와 희망을 동시에 주는데 큰 힘 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씨앗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갈 수 있기를


파르바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노파가 술레이만에게 말한 엘리펀트 킹을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세가지는 반 짝이는 것, 옭아매는 것, 그리고 달래주는 것이었다. 거울, 어망 그리고 이야기말이다.


무시무시한 존재인 엘리펀트 킹이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 앞에 무너졌던 것처럼 이 영화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마음 속에 남는다’는 대사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재 파르바나처럼 억압되어 살 아가고 있는 소녀와 여성들에게 이야기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듯 하다.


이야기는 희망이자 바람이자 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르바나가 이야기를 끝맺지 않았지만 이야기 속 소년 술 레이만이 씨앗을 가지고 무사히 마을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쯤 이면 파르바나와 샤우지아도 해변 가에 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폭력과 억압에 얽매여 있는 여성들이 자신 내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믿고 강인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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