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불변의 법칙 ‘김과 계란’

나의 든든한 아군이여!


'오늘은 아이에게 무엇을 해먹일까?’ 매일 반복되는 엄마의 숙제.

하정우 저리 가라 할 만큼 먹방녀였던 첫째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편식을 하고, 입이 짧아졌다.

특히 6살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엄마 얼마나 먹어? 나 이거 다 못 먹어. 이거 다 먹다가 토할지도 몰라. 어찌나 말을 곧 잘하는지, 듣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올 때도 허다하다.

아이가 깨작깨작 먹을수록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반찬이 맛이 없는지, 좋아하는 식단이 아닌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요리책만 한 권씩 늘어났다. 새로운 요리책이 생기면 책 속에 요리를 모두 섭렵한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모두 만들어 봐야지 하면서도 요리를 즐기지도, 잘하지도 않으니 몇 개의 요리를 하고는 손길이 끊긴다. 그런데 가끔 요리하고 싶어 안달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이가 먹지 않고는 못 배길 요리를 만들어야지 하며 매의 눈으로 요리책을 뒤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굴려가며 요리책을 넘기다 손이 멈칫한다. 꿀벌 모양의 오므라이스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그래! 오늘의 메뉴는 너다! 모양이 이뻐서 어떠한 채소를 넣고 볶아줘도 아이들은 거뜬히 먹을 거라는 요리책의 문구도 딱이다! 국이 없으면 섭섭하니까 계란국도 덤으로 끓이기로 한다. 하원 후 맛있게 먹어줄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며, 마음이 한껏 부풀어 빵빵해졌다.



냉장고에서 파프리카와 당근을 꺼냈다. 양파도 꺼낼까 하다가 도로 넣었다. 주말에 사뒀던 소고기를 마저 꺼내고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파프리카와 당근은 잘 씻어 잘게 다졌다. 최대한 작게, 아이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프라이팬에 카놀라유를 약간 두르고 손잡이를 잡고 왼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하며 기름을 퍼트렸다. 그사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소고기를 올린다. 치치직거리며 온 집안에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진동했다. 없던 입맛도 살아날 판이다. 고기가 노르스름하게 구워질 때쯤 나머지 채소를 넣고 볶은 뒤 밥을 넣어주고 골고루 섞었다.



프라이팬을 하나 더 꺼내 불 위에 올렸다. 계란을 두 알 깨서 소금을 약간 넣고 풀어준다. 요리책에서는 체에 한번 걸러 알끈을 제거하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생략했다. 식용유를 두른 뒤 약불로 줄이고 계란물을 부었다. 노랗게 노랗게 퍼져나간다. 보름달 같다. 그 사이 밥그릇에 볶음밥을 꾹꾹 눌러 넓은 그릇에 엎어줬다. 동그란 몸체가 우뚝 자리 잡는다. 이제 집중할 시간! 지단이 찢어지지 않게,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게 숨을 죽인 채 밥 위에 올린다. 멋들어지게 안착했다. 휴~! 숨 한번 몰아쉰 후 지단 가장자리를 밥 밑으로 밀어 넣으며 모양을 정리한다. 이젠 데코레이션! 김으로 눈과 입을 만든다. 남은 김을 길게 4개 자르고 배에 차례대로 올렸다. 줄무늬가 만들어졌다. 양 볼엔 케첩을 연지 찍는다. 스파게티 면으로 더듬이를 만들어 머리에 꽂아주면 드디어 완성이다! 꿀벌이 수줍게 미소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나까지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간다. 아이에게 이벤트를 할 생각에 두근두근 거린다. 세연이는 하원 후 기분이 좋다. 짜증도 안 내고 내 말도 잘 듣는다. 예감이 좋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어깨에 힘을 팍 준 채 엄마표 요리를 아이에게 대령했다.

아이는 오므라이스가 이쁘다며 방방 뛴다. 성공이라 단언하던 찰나, 밥 안에 숨겨져 있던 채소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기는 계란 지단만 먹겠단다.

세연이에게 좀 먹어보라고 보라고 하다가, 먹어 달라고 달라고 간청한다. 맛있는데 왜 안 먹어주냐며 불쌍한 척까지 했다. 엄마도 슬픈데 꿀벌도 세연이가 안 먹어줘서 슬퍼하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래도 싫단다. 우직하게 지단만 먹는다. 내 목소리가 커지자 아이는 타협을 제안한다. 이젠 컸다고 엄마와 밀당을 한다. 세연이는 말했다.

“엄마 먹을게. 근데 채소 먹다가 토하면 어떻게? 예전에 먹고 토한 적 있잖아. 그때처럼 또 그러면 안되니까. 그냥 밥이랑 김이랑 해서 먹을게. 어때?”



토할지도 모른다니…반협박이다. 아이가 그렇게도 먹기 싫다는데 강제로 입에 꾸역꾸역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성스레 만든 음식은 내가 해치워야 할 잔반 처리가 되었다. 앞으론 시간 들여 요리하지 않으리라 바득바득 다짐한다. 지금은 아이가 뭐라도 먹어야 하니, 새 밥과 김을 아이 앞에 갖다 주었다. 세연이는 약속대로 먹는다. 그것도 아주 먹음직스럽게. 두 손으로 김을 두장 세장 연이어 짚어 먹는다. 김만 먹으면 짜다는 말에 그제야 밥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는다. 그래 뭐라도 먹어라. 나는 지단이 사라져 버린 오므라이스 아닌 볶음밥을 먹어댄다. 맛만 좋구만!



미련이 남은 나는 국이라도 먹어줬음 해서 아이에게 목 막히니까 국도 먹으라고 권했다. 알겠다며 두 숟가락만 먹고 더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음식 하며 설렘으로 부풀었던 마음은 퓨~ 하고 바람이 빠졌다. 어릴 적에는 뭐든 먹음직스럽게 먹던 아이가. 크면 클수록 머리를 굴려 편식을 한다. 그래서 늘 식탁에서 아이와 씨름을 한다. 강하게 밀어붙히면 나아질까 싶어 예전에 강제로 먹였더니 토를 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나마 계란 프라이와 김은 좋아해서 매번 줘도 싫증 내지 않고 먹어준다. 내가 시간을 할애해서 만든 음식은 외면당하고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계란 프라이와 김은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내 요리가 그렇게 맛이 없나 싶어 시무룩해진다. 그럼에도 종종 특식을 만든다. 엄마의 마음이란 게 안하리라 마음먹어도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서브엔 항상 김과 계란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선 자리를 지킨다. 반찬이 없더라도, 김과 계란은 늘 아이의 식사를 책임진다. 딸랑 밥에 김만 줘도, 딸랑 밥에 계란 프라이만 줘도 아이는 투정 없이 먹는다.

김이 없으면 계란이, 계란이 없으면 김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운다.



‘어린이집에서는 잘 먹는다니까... 그래. 집에선 뭐라도 먹음 됐지.’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반찬에 대한 집착도 버리기로 했다. 육아도 힘든데 매일 음식으로 아이와 실랑이하기도 진 빠지니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부엌엔 항상 두 가지가 부족하지 않게 채워져 있다. 만약 김과 계란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든든한 조력자 김과 계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