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하원 후 기분이 좋지 않다. 태권도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내 품에 안겼고, 태권도장에서 오빠가 놀렸다며 칭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우왕좌왕 설명하는 세연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랬구나 하며 공감해주고 토닥거려주었다. 근데 집에 와서도 찡찡이다. 그러다 나한테까지 짜증을 냈다. 내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말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하루 종일 둘째에게 시달린 나는 받아줄 여력이 없었다. 첫째에게 대꾸하고 반응해주면 더 찡찡댈걸 알기에 애써 무시했다. 엄마가 관심을 주지 않자 큰애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린다. 끝내 엄마 나빠라고 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방 안에서 엄마 나빠라고 연신 소리친다. 나는 안방을 향해 울음이 그치고 진정되면 나오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방에 혼자 있는 걸 극도로 겁내 하는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처절하게 운다.
매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숟가락에 이유식을 떠서 둘째에게 먹였다.
그 사이 첫째는 처절하다 못해 맹렬하게 엄마를 부르며 운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진정되면 나오라고 아이를 향해 한번 더 소리쳤다. 동생이 이유식을 다 먹어갈 무렵 첫째는 훌쩍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엄마 다 그쳤어. 괜찮아. 그리고 미안해. 말 잘 듣을게...... 근데... 엄마 나빠."
"엄마는 세연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집에 오자마자 무작정 엄마한테 짜증내고 소리 질렀잖아. 엄마가 좋게 말해도 세연이는 오히려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신경질 부리다가 엄마 나빠하며 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쾅 닫았지?!"
아이의 구슬 같은 눈에서 눈물이 넘실거렸다.
"엄마... 나빠.."
"엄마가 왜 나빠?"
"엄마는 동생만 돌보잖아."
"......"
가슴에 큰 돌덩이가 떨어져 철렁거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입이 철근처럼 무겁다.
파르르 떨리는 입을 떼며 말했다.
"세연이가 속상했구나. 엄마는 세연이 사랑해. 얼마나 사랑하는데. 동생이 아직 기지도, 걷지도 못하니까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는 거야. 동생이 걸어 다니면 동생 혼자서도 놀 수 있어. 그럼 엄마는 세연이랑 많이 놀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동생이 어서 커야겠다 그치?"
양손을 내밀자 내 품에 안겨 엉엉 운다. 기분이 나아진 첫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논다. 오늘은 엄마와 동생 옆에서 잘 거라며 이불을 깔고 자리를 본다. 엄마 베개, 동생 베개, 자기 베개가 나란히 놓였다. 그 상황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신랑도 야근이고, 내일은 쉬는 날이니 부딪혀 보지 뭐. 나는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계산을 했다.
20분을 안고 토닥이니 둘째가 잠들었다. 목이 축 늘어짐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눕힌 후 방에서 나왔다. 첫째를 데리러 간 사이 둘째가 깨서 운다. 오~쉣!!!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쏜살같이 안방으로 달려가 둘째를 안고 토닥이는데 첫째가 뒤따라 들어오려 했다. 어머니는 세연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놀란 아이의 눈망울. 어쩔 줄 몰라 눈만 끔뻑거리며 두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아이에게 한 마디만 뭐라 하면 금방이라도 울 기세다.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에게 들어와도 괜찮다고 손짓했다.
두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지났다. 내 인내도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원인불명의 감정들이 명치에서부터 휘몰아쳐 경보 시스템이 울리기 직전이다. 참아야 돼. 여기서 화를 내면 안돼.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조용히 해줘야 동생이 잘 수 있어. 오늘 같이 자기로 약속할 때 조용히 하기로 했었지? 동생이 자야 엄마도 네 옆으로 가서 같이 누울 수 있어! 그러니까 조용히 해줘. 알겠지?"
세연이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계속 소리를 냈다. 둘째는 누나의 모습을 쳐다보느라 잠자려 하지 않았다. 결국 시끄럽게 할 거면 같이 잘 수 없으니 방에서 나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이 표정이 딱딱해졌다. 첫째를 본체만체하며 둘째를 안고 재웠다. 동생이 잠들 때까지 첫째는 침대에 누워 손가락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아기를 재우는데 한쪽 가슴이 찌릿찌릿 따끔따끔거렸다. 어린아이가 짧지 않은 시간 침대에 누워 쥐 죽은 듯 있어 준다는 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엄마의 당부를 지키려 노력하는 첫째의 마음을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지며 유리 조각이 가슴 여기저기에 박혔다. 얼마나 엄마와 자고 싶었으면... 둘째가 잠들자 첫째 옆으로 가서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세연아 엄마 약속대로 참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내가 조용히 해야 동생이 자지."
"에고~참느라 고생했네 우리 딸~. 엄마가 세연이 정말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동그란 눈을 꿈벅거리며 아이는 미소를 지었고, 내 품으로 비집고 들어와 나를 안았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고 10개월 만에 원래 자기가 자던 안방 침대 그리고 내 옆에서 잠이 들었다.
동생으로 인해 포기할 게 생기고,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된 아이. 부모는 수월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아이에게 더욱 단호해질 수밖에 없고, 아이는 그런 부모에게 떠밀려 다니다 마지못해 적응을 해나가는 걸지도 모른다. 어린아이가 양보하고 포기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엇나가지 않고 잘 커주는 아이. 아픈 만큼 성장한 거 같아 가슴과 목 사이가 뜨겁게 시큰거렸다.
괜스레 마음이 매워져서 얇디얇은 이불을 아이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쌔근쌔근 잠든 세연이의 이마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아이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앞으로도 힘든 순간은 다가올 테지만 우리 서로 잘 견뎌 낼 수 있기를소망하고 또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