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부터 세윤이는 징징이다. 장장 9시부터 11시까지. 혼자 징징거리면 또 몰라. 보챌 때마다 기어서 내 품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2시간이 넘어가자 내게는 지긋지긋함이 몰려드는 중이었다. 어느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머님과 같이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일요일 식사는 어머님이 책임지신다는 거다. “너는 아이나 봐라.”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 손은 요리하느라 분주하고, 나는 아이 보느라 분주하다. 딱 하루만이라도 삼시 세 끼를 차리지 않는 건 큰 위안거리다.
11시 반. 가족 모두 식탁 앞에 자리 잡았다. 세윤이도 함께. 아침이랄 것도 없이 빵 쪼가리와 과일로 아침인 듯 아침 아닌 주전부리를 했던 둘째였기에 배고플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잘 받아먹는다. 그것도 초반에만. 네 숟가락은 먹었을까. 입 속에 음식물이 있는데 손으로 혓바닥을 긁으며 짜증을 낸다. 입안에 있던 음식물은 아기 식탁 주위로 떨어졌다. 그 후로는 숟가락이 자기 입을 향해 다가오면 고개를 휙 돌리며 징징거렸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세윤이를 안아 달래기 시작했다. 신랑이 대신하겠다고 일어났다. “에이~됐어! 밥이나 먹어! 이럴 때 아님 요새 나한테 잘 오지도 않아!"라고 어머니는 말했고 아들 손길이 닿지 않게 몸을 반대쪽으로 휙 돌렸다. 머쓱한 남편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서 먹고 손을 바꿔드려야 하니까. 손과 입과 목젖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씹고 넘겼다. 5분도 안돼서 나의 식사는 끝났다. 집에서는 어떻게 해도 달래 질 거 같지 않았다. 나는 비장의 무기를 채택했다.
세윤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앉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하다. 이 자식 보게. 아빠와 할머니와 누나한테 빠빠이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아이에겐 모든 게 구경거리다. 볼거리가 많으니 아이 눈은 이리저리 바쁘다. 한마디도 안 한다. 더 이상 보채지 않아서 살겠다. 슬슬 동네 놀이터를 향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정오 때라 햇볕이 따갑다. 덥다 더워. 그늘 아래로 피하고 싶었지만 그늘이 드리워진 명당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땡볕 아래 유모차를 세웠다. 땅바닥에 발을 디딘 세윤이의 눈이 빛난다. 발이 움직인다. 거침없이 부지런하게. 놀이터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들이 인사 해주자 좋다고 웃는다. 아기는 까꿍 놀이를 해달라고 내 뒤에 숨어 왼쪽 허벅지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그새 할아버지들은 세윤이에게 관심이 없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쩐지 지친다 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세윤이의 낮잠시간이라 한 바퀴 더 돌며 재울까 했지만 내가 힘들어서 안 되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신랑은 대청소 중이다. 다행히 세윤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거실에 내려놔도 보채지 않는다. 나는 소파에 철퍼덕 앉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청소를 보고 있자니 내 손과 발이 근질근질하다. 모른 척 쉬고 싶지만 외면하기 힘들다. 두 아이가 혼자서 잘 놀고 있을 때 후다닥 집안일을 끝내야 한다는 반사 신경이 내 몸에 심어졌기 때문이리라. 나는 청소기를 들고 부엌에 서 있었다. 드디어 대청소가 끝났다. 세윤이는 산책 약발이 떨어지는지 징징 모드가 발동되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얼굴과 귀를 비빈다. 졸리다는 신호다. 난 너무나 지치고 지긋지긋했다. 세윤이를 재울 자신이 없었다. 신랑에게 유모차로 재우고 오라고 부탁한다.
남편이 나가자 나와 놀려고 한참이나 기다린 첫째에게로 갔다. 세연이는 미미의 집을 세팅한 후였다. 난 아이가 주는 배역을 기다리면 된다. 세연이는 미미의 친구를 내게 내민다. “미미야 놀자”라는 대사로 나의 역할은 시작됐다. 나는 미미 친구 집을 침대로 정한다. “엄마! 이제 밤이야”라는 딸의 목소리에 인형도 나도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침대. 잠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세연이는 “엄마~아침이야~! 일어나야지! 미미네 집으로 놀러 와!”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 밤이잖아. 아침 되려면 열을 두 번 새어야 해!” 아이는 열을 두 번 샜다. 그래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엄마의 모습과 시큰둥한 반응이 마음에 안 든 지 한 소리 한다. “엄마 나랑 놀기 싫구나! 안 놀 거야!?” “놀아야지”라고 말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침대에 끈끈이가 붙어 있는 게 틀림없다. “엄마 안 놀아?” “엄마 좀 자면 안 될까? 너무 피곤한데..”라고 말했다. 세연이는 “엄마 나빠!!!!!”하며 문을 쾅 닫고 거실로 나간다. 아이를 달래야지 하면서도 눈꺼풀 위로 무거운 잠이 몰려왔다.
그날 저녁 세연이를 목욕시키다 아까 일이 걸려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괜찮아 뭐~ 근데 아기 잘 때 잤어야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어제 아기 자고 나서 불(스탠드) 켜고 혼자 놀았잖아! 아기 잘 때 같이 자야 안 피곤하지!” 내게 지적을 한다. 어메.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아이가 잠든 줄 알고 스탠드를 켜서 책을 읽었었는데 딱 걸린 거다. 그 순간 10년 후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딸의 모습을 만나고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 미래가 그려지는 듯하다. 이제부터 시작인 건가. 사실 딸은 여섯 살이 된 후부터 시동은 걸고 있었다. 딸의 잔소리는 제 속도를 내며 점점 늘어 갈 거라 생각하니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