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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북튜버이자 작가 바켄
Dec 27. 2019
“응. 그래. 1월 3일 영등포 헬로 밀가루에서 보자.”
첫째 방학기간에 맞춰 P와 약속을 잡았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6살과 17개월인 아이들을 혼자서 어떻게 데리고 가지? 택시? 지하철? 버스? 아니면 내가 운전을 해? 운전이라...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지하철도, 버스도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택시? 음... 글쎄다. 예전에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아이들을 대동하고 P와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비가 제법 왔다. 지하철을 타려다 택시를 탔다. 출발. 기사 아저씨의 내비게이션은 50분 후 도착이라고 안내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아이들이 50분 동안 택시 안에서 잘 있어줄지, 11개월인 둘째가 운다면 어떻게 달랠지, 돈은 얼마나 나올지 머리가 복잡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사 아저씨께 물었다. “영등포까지 얼마나 나올까요?” “만 삼천 원에서 오천 원 사이로 나올 거 같은데요?!” 가는 동안 두 아이를 돌보면서도 쉬지 않고 올라가는 택시 미터기의 숫자에 온 신경이 쏠렸다.
택시는 45분 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신용카드를 꺼내 기사 아저씨께 드렸다. 만 삼천 원을 결제했다. 내리는데 손이 많이 갔다.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기저귀 가방을 메면서 우산을 펴고 발을 땅 위에 디뎠다. 남은 손은 첫째가 택시에서 내리도록 거들었다. 은근히 시간이 걸리자 아저씨에게 눈치가 보였다. 무안해서 택시 문을 닫으며 “감사합니다”를 한 번 더 말했다. P는 4살인 딸과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임스퀘어 주렁주렁 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시간은 5시. 퇴근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가긴 해야 하는데 올 때보다 돈이 더 나올까 봐 겁났다. 그렇다고 피곤한 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은 차마 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첫째와 둘째는 타자마자 잠들었다. 다행이다. 난 택시가 잘 가고 있는지 창 밖을 보면서 미터기를 수시로 보기만 하면 됐다.
택시는 빨리 가는 듯했지만, 차가 많이 막히는 구간을 두 어번 지났다. ‘혹시 일부러 차 막히는 구간으로 가는 거 아니야?’ ‘돌아서 가는 거 아니야?’ 아는 길이 아니라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택시 미터기가 만원을 지날 쯤에야 아는 길로 들어섰다.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잠든 두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집 앞에 도착하니 만 오천 원.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오늘 쓴 돈이 얼마더라. 택시비만 28,000원. 주렁주렁 티켓값은 37,800원. 식사값이 18,000원. 총 83,800원을 썼네. 많이도 썼다. 택시를 안 탔다면 돈을 덜 썼을 텐데. 그래도 택시 덕분에 편하게 오갈 수 있었다며 위안을 삼았다.
근데 이번 약속은 택시 타는 게 아까웠다. 난 운전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운전 면허증을 땄고, 제주에서 5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했다. 상경하고 결혼 전까지 4년 동안은 장롱면허 신세였지만 말이다. 첫째를 낳고 나서도 운전한 적은 거의 없다. 아이를 달래고 돌보는 건 엄마인 내가 더 잘하기 때문에, 신랑은 운전을 맡고 나는 뒷좌석에서 아이를 돌봤다. 어쩌다 가끔 신랑이 술을 마실 때만 대신 운전했다. ‘4년 장롱면허+자주 운전하지 않음’인 내가 세 달에 한 번꼴로 운전할 때면 온몸의 신경이 쭈뼛쭈뼛 섰다. 무엇보다 서울 운전이 무서웠다. 빽빽한 도로에서 옆 차선으로 바꿀 때도 애간장이 탔다. 차선 변경에 타이밍을 놓치거나, 끼려는데 뒤차가 빵빵거리면 겁먹고는 방향등을 껐다.
운전할 때면 대화는 꿈도 못 꾼다. 옆에서 하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앞만 본다. 에어컨이나 히터를 켜고 끄는 일이나, 창문을 여닫는 일도 가당치 않다. 길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내비게이션은 왜 그리 헷갈린지. 커브를 꺾는 남은 거리가 500m와 200m의 차이가 분간이 안돼서 쩔쩔맨다. 뒤차나 옆 차가 왜 그렇게 운전하냐고 손찌검할까 봐 창문을 단단히 올린다. 난 왜 운전이 무서워졌을까. 결정적인 이유는 가뭄에 콩 나듯 혼자서 아이를 태우고 운전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인 거 같다.
인천 청라 아이사랑나눔터에서 서울 상암동 세원아파트로 운전한 적이 있다. 초행길이었고, 퇴근시간이었다. 수많은 차가 경인고속도로를 탔고, 나도 그 위를 달렸다. 4살이던 세연이는 뒷좌석에서 과자 달라, 뽀로로 영상이 꺼졌다며 켜달라 요구했다. 운전하느라 혼이 도로로 나간 나는 도와줄 수 없었다. 아이에게 빨간 불 돼서 차가 멈춰야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4살 아이가 이해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내비게이션은 경인고속도로에서 계양/부평 방향으로 나가라고 알렸다. 출구 1km부터 차가 막혔다. 의아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드디어 출구로 들어서나 싶더니 도로는 두 갈래로 바로 나뉘었다. 왼쪽 차선은 계양 방향. 오른쪽 차선은 부평방향.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오른쪽 차선에서 왼쪽 차선으로 바꿔야 했다. 분기점 앞까지 차들은 비켜주지 않았다. 우는 세연이를 달래며 차선 변경을 하자니 정신이 초토화됐다. 분기점 바로 앞에서야 간신히 차선을 바꿨다. 손이 덜덜 떨렸다.
또 한 번은 낙후된 건물에 키즈카페가 있었다. 옛날 건물이라 주차 공간은 협소했지만 비가 제법 와서 차를 몰고 가야 했다. 지하 1층 만차. 지하 2층도 만차. 자리가 없어서 돌아서 나가려 는데, 내 뒤로 차 4대가 들어서서 돌릴 수가 없었다. 뒤에서부터 순서대로 나가야 하는 상황. 맨 뒷 차는 커브가 심한 통로를 후진으로 빠져나가는 곡예를 보여주었다. 남은 차들은 또 한 번의 묘기를 보여주기보단 예닐곱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방향을 바꿔 지하 2층을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나는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시간이 걸릴수록 빠져나갈 수 있을지 깜깜했다. 십여분을 실랑이하다 오른쪽 백 라이트를 벽에 들이박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아이를 태우며 운전하다 많은 변수를 맞닥뜨렸다. 우는 아이에게 신경 쓰다 길을 잘 못 든 적도, 아이를 달래다 신호등의 빨간불을 못 보고 사거리를 지나갈뻔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빌라 입구에 다른 차가 주차해서 빌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옴짝 달짝 못한 적도 꽤 된다. 여기서 쓴웃음이 나는 건, 앞차나 뒤차가 빵빵거리며 빨리 비키라고 성질을 냈다. 거기다 아이라도 찡찡거리면 말 다했다.
운전에 두려움을 안고 지내던 와중에 신랑은 올해 올란도를 팔고 카니발을 중고로 장만했다. 나도 찬성은 했다. 우리 부부, 6살 첫째와 11개월인 둘째, 시어머니까지 타려면 올란도보단 카니발이 편하긴 하니까. 언젠가 내가 운전은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며 되도록 운전할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랬다. 올란도 때와 마찬가지로 세네 달에 한 번은 신랑이 만취하면 대신 운전은 했다. 신랑이 옆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긴장은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카니발이라는 대형차는 큰 부담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부천 먹자골목이라서 동네가 복잡하다. 골목에서 도로로 나가기까지 맞은편에서 차가 들어오면 옆으로 비켜줘야 한다. 식당 앞에 주차한 차들은 골목을 비좁게 했다. 그러다 차가 뒤엉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큰 차와 복잡한 골목.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살찌웠다. 역시 혼자 운전은 무섭다.
그럼에도 둘째가 16개월 차가 되니, 나도 이젠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다고 언제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여기저기를 거침없이 운전하는 멋들어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1월 3일 약속을 계기로 운전 연습에 매진하기로 했다. 결심한 자체만으로도 온몸이 빳빳해지며 떨렸다. 12월 14일 토요일 오늘부터 주말마다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두둥! 나의 첫 미션은 우리 가족과 신랑 친구를 태우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주차하고 회와 조개를 산 후, 신랑 대학 선배네 상도동 아파트로 가야 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생각하니 가슴을 죄어오는 긴장감이 온몸을 팽팽하게 감쌌다. 신랑 친구에겐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할 거야. 참고해줘.”
부천에서 목동과 영등포를 지나 올림픽 도로를 잠깐 타다가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로 들어섰다. 우리 차 앞뒤로 긴 줄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난 걱정했다. 주차 공간은 충분할지, 별문제 없이 주차할지. 또 다른 변수가 생기진 않을지. 그래도 옆에 조언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섰다. 2층은 복잡해 보였다. 3층으로 올라갔다. 스타렉스 옆에 자리가 있었다. 정지하고 주차를 위해 후진했다. 맞은편에 긴 트럭을 피하려고 각도를 잘못 잡았더니 실패. 우리 차 옆으론 내 주차를 기다리는 차가 3대나 있었다. 못하겠어. 여긴 포기. 신랑과 신랑 친구는 괜찮다고 다른 자리를 찾자고 격려했다. 다행히 얼마 안가 빈자리를 찾았다. 심호흡을 했다. “여보 여기서 핸들 돌려서 들어가면 되겠지?” “일단 해봐” 두 눈은 왼쪽과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각도가 맞지 않아 앞으로 차를 몰았다가 각도를 다시 맞추고 후진을 했다. 이번엔 성공. 진이 벌써 바닥났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상도동 아파트까지도 무사히 도착했다. 차를 새우기 쉬운 자리가 있어 주차했다. 온몸이 녹초다. 술자리에서 운전의 무서움에 대해 토로했다. 선배의 와이프도 격렬히 공감했다. 우린 서로 동지애를 느꼈다.
신랑 친구는 “겁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사고를 안내요. 조심히 운전하니까요.” 신랑은 “임기응변은 경험이야. 변수 때문에 운전을 피하면 안돼. 많이 운전하고 부딪혀봐야 늘지. 상황 대처력도 경험해야 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겁 많은 사람이 오히려 사고를 안 낸다는 말이 이상하게 격려가 됐다. 그래 조심조심 운전하자. 뒤차나 옆 차가 빵빵거려도 휘둘리지 말고 차분하게 하면 되는 거야. 밤 11시. 다시 운전할 시간. 하루 종일 운전해서 그런지, 피곤해서 그런지 무서움이 둔해졌다. 밤 운전이라 시야가 좁지만 서두르지 말고, 허둥대지 말고. 침착하게만 하자고 곱씹었다. 1월 3일도 멋지게 미션 완수하길! 근데 혼자서 여섯 살, 17개월 아이를 데리고 운전이라니. 무섭긴 하다. 디데이가 가까워온다. 어떡하지?!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