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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응급실을 갔다. 똥 때문이었다#1

새벽 5시 반 부천 성모병원 응급실에 있다.


세윤이는 새벽 내내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2시 반부터 입을 앙 문채 얼굴을 덜덜거리며 울었고, 강도와 횟수는 점점 강해지고 잦아졌다. 아이 이마에 손을 올린다. 열은 없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그러지. 새벽 5시. “애미야~애미야~”하며 어머니가 다급히 불렀다. 교대로 아이를 보다 잠깐 잠든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는 세윤이가 빨대컵을 물고 잠들길래 강제로 뺐더니 경기하듯 울기 시작했단다. 그러다 아이 입에서 피가 주욱 흘렀다고.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발버둥 치며 울고 있었다. 안으려고 하자 아이 발에 얼굴을 두 대나 맞았다. 달래 지지도 않았다. 세윤이 목에 묶여 있던 하얀 가제 수건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황급히 깨난 신랑은 허겁지겁 기저귀 두 장과 물티슈, 빨대컵을 챙겼고, 나와 어머니는 세윤이에게 옷을 입혔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보안요원이 나와 아기의 인적사항을 물었고 기록했다. 접수를 위해 원무과로 안내됐다. 원무과 직원은 간호사가 나올 때까지 응급실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응급실 문이 열리더니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덩치 큰 간호사가 나왔다. 온 이유와 아이 상태를 물으며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리고는 빨간 글씨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있는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응급실은 분주했다. 드라마 ‘도깨비’ 공유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고 있었고, 갈색 단발머리 간호사는 응급실 가운데에 위치한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그 주위로 간호사 여럿이 바삐 움직였다. 그중 간호사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이 입에서 피가 났다구요? 언제부터요? 아이 증상은요?” 순서대로 물으며, 처치실로 안내했다. 간호사 두 명이 더 들어왔다. 피가 어디서 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세윤이의 입을 벌리려 했지만 발버둥 치는 세윤이는 완강했다. 숨 넘어갈 듯 운다. 꺼억 꺼억. 헛구역질을 몇 번하더니 토를 했다. 역한 냄새가 처치실에 진동했다. 피의 원인은 확인도 못한 채 우린 대기실로 안내됐다.     



15분은 지났을까. 응급실에 들어설 때 봤던 공유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 의사가 왔다. 설압자와 펜라이트를 가지고 노련하게 아이 입 안을 살폈다. “애가 어금니로 오른쪽 혀를 깨물었네요. 입에서 나왔던 피는 거기서 나온 거 같아요. 부위가 제법 큰데... 아기들은 혀를 꿰매는 게 더 위험해요. 너무 심할 경우에는 전신만취를 하는데, 보통은 진통제를 먹이며 아물기를 기다려요. 소아과 선생님이 다시 봐주실 거니 입안에서 흘렀던 피 때문에 걱정하진 마시고 잠시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우리 곁을 떠났다. 곧이어 아이는 엑스레이를 찍었다.   


  

10여 분 후 간호사가 소아과 전문의가 있는 곳으로 우릴 안내했다. 손질 안된 머리의 남자 의사는 핏기 없는 입술을 열며 말했다. “입안을 좀 볼게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의사는 세윤이가 진저리 치면서 새벽 내내 울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혀를 깨문 것 때문에.

둘째,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똥과 가스가 많이 차 있어서. 

셋째, 목감기로 목이 부어있어서. 


그는 세윤이에게 변비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변비가 심해서 여기 소아과에서 두 달 정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서 그만 다니고, 지금은 한약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음... 우선 관장을 하고 아이 상태를 보기로 하죠.” 의사는 변비에 무게를 실었다. 간호사가 와서 세윤이 항문에 관장약을 투여했다. 이상하네. 어른들은 관장을 하면 1분 버티기도 힘든데, 세윤이는 2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그 사이 아이는 졸기까지 했다. 옆 침대에서 우는 여자 아이 소리에 세윤이는 그제야 깨더니 방귀를 연신 뀌었고 엎드려 울면서 달걀만 한 똥 두 덩이를 쌌다. 아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으앙으앙. 10분 후. 언제 그래냐는 듯 웃으며, 응급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려 했다. 간호사는 원무과에 들려 수납 후 처방전을 받고, 원내 약국을 들리라며 위치를 알려주고 갔다. 처방전을 보았다. 변비약과 감기약이었다. 변비약에 시선이 머물렀다. 크게 아픈 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발걸음이 무겁다. 앞으로 어떻게 더 해줘야 할까. 변비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할까. 변비약은 다신 먹이고 싶지 않은데.     



세윤이는 이유식을 시작하던 생후 6개월부터 7일~10일에 한번 응가를 봤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첫째에게 변비가 없었으니 둘째의 변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질 거라 믿었던 거 같다. 두 달이 지날즈음 세윤이는 변을 보기 이삼일전부터 하루 종일 주기적으로 진통하듯 내 다리를 붙잡고 발을 동동 거리며 울었다. 변을 본 날만 컨디션이 좋고 다음날부턴 변 보기 전까지 징징 모드가 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거버 푸룬 퓨레’가 효과 좋다는 평이 많았다. 당장 사서 먹이기 시작했고 일주일은 넘기지 않고 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차도는 없었다. 며칠 후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의사는 식이요법을 더 해보고 안되면 변비약을 써보자고 했다. 더 악착같이 푸룬, 사과, 배, 고구마 외로도 변비에 탁월하다는 음식들을 먹였다. 5일에 한번 쌀 때도 생겼지만 그것뿐 아이는 여전히 발을 동동거리며 힘들어했다. 다시 소아과를 방문했고 변비약을 처방받았다.      



삼 일 후 소아과. 약을 먹고도 변을 아직 못 봤다고 했더니, 이 처방이면 보통 반응을 보이는데라고 말하며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의 배 이곳저곳을 만지던 의사는 털썩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며 말했다. “드물지만 거대 결장이거나, 항문이 작아서 변 보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큰 병원 가서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진료의뢰서 써드릴게요.” ‘변비 때문에 큰 병원까지 가야 하는 거야?!’ 한숨이 푹 나왔다. 소아과를 나오기가 무섭게 부천 성모 병원을 향했다. 엑스레이 결과 다행히 거대결장은 아니었다. 그날부터 세윤이 상태에 맞게 변비약(마그밀정, 갈타제 산, 포리부틴 드라이시럽 or 듀파락-이지 시럽)을 처방받았고. 4일~7일마다 방문해서 아이 경과를 보고 약의 강도를 조절했다.      



아이는 복용 전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하루에 10~20번을 지렸고, 지릴 때마다 내 다리를 붙잡고 얼굴을 파묻은 채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항문도 짓물러서 비판텐 연고를 수시로 발라줘도 호전되지 않았다. 아이는 항상 칭얼거렸고 한시도 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4~5일에 한번 크게 쌀 때도 약 먹기 전처럼 울며 쌌고,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큰 병원에서 변비치료를 받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던 나로서는 두 달 동안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막막했다.      



그러던 중 친정에 갈 일이 있었다. 엄마는 아이 상태를 보더니 걱정했다. 해도 해도 너무 지린다고, 검은색으로 묻어나는 변 상태도 안 좋다며 염려했다. 양약은 억지로 변을 빼내는 거니 몸을 보완하면서 치료할 수 있는 한약을 먹여보자고 했다. 제주에 용한 한의원이 있다면서. 그날부터 양약을 끊었고 아이의 지림도 사라졌다. 세윤이의 컨디션도 좋아졌다. 응가도 1일~3일에 한번 보기도 했고, 변 보기 며칠 전부터 발을 동동거리며 울던 증상도 사라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힘을 주지도 않았다. 나는 좋아지고 있구나 안도하며 한약과 식이요법을 분주히 병행했다. 한 달이 지나자 스멀스멀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잘 웃고, 잘 놀았다. 변비에 좋다는 음식들을 수시로 검색하고 바꿔가며 열심히 먹이던 중에 오늘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응급실에서 처방해준 변비약은 그동안 쌓아 올린 나의 노력을 순식간에 무너트리는 거 같았다. 여기서 어떻게 더 해야 하지.     



집에 와서 어머니는 방글방글 웃는 세윤이를 품에 포옥 안으며 말했다. “네 신랑도 어렸을 때 똥 누기 무서워해서 변비 있었어. 그래서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 관장 많이 시켰지. 세윤이가 아빠를 닮은 모양이네. 오늘처럼 힘들어할 때는 관장을 시키자. 어떠니?” 관장이 내키지 않았다. “좀 생각해봐요.”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엄마로서 매 순간 아이를 위해 선택을 한다. 무엇이 답일지. 어떤 게 나을지. 저울질한다. 아이를 위해 엄마는 조금 더 분주해지고, 아이를 위해 엄마는 변비에 대해 공부한다. 무엇이 해결책인진 모르지만 변비에 좋다는 것들을 시도해본다. 아이 변비가 다 내 책임 같고,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거 같아 죄책감이 든다. 아이를 위해,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시 선택을 한다. 그저 나아지길 바란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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