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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바닥에서 글 쓰는 엄마

새벽 5시 반.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에 둘째가 깼다.

난 의자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았다. 토닥토닥. 10여분이 지나자 세윤이 고개가 앞으로 추~욱 늘어졌다. 느릿하고도 신중하게 눕히고 다시 화장대에 앉았다. 이번엔 마우스 대신 터치패드를 사용하고, 키보드는 1초 간격으로 꾸욱 꾸욱 누른다.



아이를 다시 재우고 글 쓰는 나는 글로 돈 버는 사람일까? 그럴리가. 그저 안 쓰면 못 뵈기는 엄마 사람이다. 살고 싶어서. 엄마인 나 말고, 박현주로 살고 싶어서. 나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어서 쓰고 또 쓴다. 거창한 글은 아닐지라도 이 덕에 나는 지워지지 않은 채 육아 전선을 버티고 있다.    

  


새벽에 잘 깨는 둘째 때문에 초반엔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썼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보통 11시에 잠든다. 나도 졸리지만 내 시간을 위해 어기적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황홀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잠은 훌쩍 달아난다. 좋다고 새벽 2시까지 만끽하다 보면 새벽 5시까지 잠이 안 와 방바닥을 박박 긁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겨났다. 


그 괴로움이란. 입은 찢어지도록 하품을 해대고 눈 끝에는 쥐똥만 한 눈물이 하염없이 맺히는데 왜왜왜 잠은 안 오는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핸드폰을 켜서 ‘잠 오는 방법’을 검색하기도 했다. 무슨 방법을 해도 먹히지 않고 겨우겨우 힘겹게 잠들다 보니 겁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잠들지 못해 괴로워할까 봐.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잘 때 푹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이 방법엔 걸림돌이 있었으니. 그건 잠귀가 밝은 둘째가 알람 소리에 깬다는 거다. 휴. 그래서 알람 소리를 최대한 작게 설정했다. 아이유가 <밤편지>를 속삭이는 지경까지. 숨죽여야 겨우 들리는 정도기에 귀 바로 옆에 두지 않으면 듣기도 어렵다. 장점은 둘째가 깨나지 않는다는 것. 단점은 나도 깨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 그렇다고 소리를 높일 순 없고.      



복병은 끝이 아니었다. 어렵게 일어났건만, 키보드 소리에 둘째는 번번이 깨났다. 한두 번 재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맥이 풀려버린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쓰면 다행이다. 아이를 재우다 바탕화면 그대로 노트북을 끈 적도 여러 번이고, 이제 써볼까 하다 끈 적도 수두룩하다.      



80km는 달려야 하는 차가 20km도 속도를 못 내니 이를 어쩔까. 속 터진다. 

이쯤 되니 뭔가 그럴듯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답은 없었다. 그러다 내 눈에 번쩍하고 들어 온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안방 화장실 문이었다. 문이 있다는 건 아이를 깨우지 않도록 보안 시스템이 하나 더 있는 거와 같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 문을 넘었다. 이 문 하나에 의지해 화장실에서 글을 쓴 지 삼 주째다.     



이 방법은 나름 효과적이다. 아이도 깨지 않고 나도 내 속도대로, 키보드 소리도 타닥타닥 내며 글을 쓸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과 겨울이라 외풍이 있다는 것. 전자는 핸드폰에 핫스팟을 켜서 해결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후자는 양말을 신어 발을 따뜻하게 하고, 도톰한 외투를 걸치면 된다. 문제도 해결됐으니 이젠 쓰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세면대에 받침대를 올리고, 노트북을 얹고, 화장대 의자를 가져다가 앉아서 글을 썼었다. 세면대와 의자의 높이가 맞지 않다 보니 등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래서 노트북을 화장대 의자로 옮기고 변기에 앉아 써봤다. 역시 등이 뻐근했다. 여기서 후퇴할 순 없어. 에라 모르겠다. 화장실 바닥에 수건을 2번 접어서 깔고 앉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그 위에 노트북 받침대를 올렸다. 이거다. 이거. 등이 아프지 않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엉덩이가 빠개질 듯 몹시 쑤시다는 거 빼곤. 그럼 수건을 한 장 더 깔아 앉으면 된다. 이로써 아지트 완성! 얼마 후 소중한 아지트를 깨끗이 청소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던 것도 줄어드니 그야말로 명당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입술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글을 쓰지 않으면 미칠 거 같다. 고백하건대 글을 쓰지 않았을 때는 신랑이나 아이들이 내 신경을 건들면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이게 맘처럼 조절이 안됐었다. 그리하여 엄마로 살고자, 나를 지키고자, 가정을 지켜내고자. 난 써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가 다른 방에서 자는 그 날까지 화장실에서 글 쓰는 짓은 계속되리라. 아득하구나 그날이여. 



사실 거실로 나가 써도 된다. 근데 같이 사는 어머니에게 눈치 보인다. 

일찍 일어나서 노트북을 끄적이는 며느리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네가 잠을 못 자서 아이 볼 때 힘들어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눈총 받기도 싫기 때문이다.  글을 쓴 날은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은데 말이다. 어머니는 이해할까.     



아이들이 아프거나 내가 몸살 나거나 둘째가 여러 번 깨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 새벽에 글 쓰는 일은 뒷전이 된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맥 빠질 때도 많다. 처음엔 화나고 속상해서 하루 종일 예민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힘들게 해도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그런 내 모습에 더 화가 났다. 이래서 난 써야만 하는 인간이구나 매번 깨달았다. 그러 던 어느 날 <엄마로만 살지 않겠습니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목표는 최대값보다는 최소값으로 정하는 게 이루기도 쉽고 만족감도 높다.’   


   

그래. 욕심을 버리자. 10분이면 어떻고 일주일에 3일이면 어떤가. 적어도 10분이고, 일주일에 3일은 쓴 게 아닌가.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거 같았지만 상황을 한결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언제면 쓰고 싶을 때 원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을까를 꿈꾸게 된다는 건 비밀. 하루 종일 침대에 뒹굴거리며 책도 읽고 글도 쓰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서 침이 흐른다. 잠깐 닦고.     



나는 안다. 나의 상상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를 목 빠지게 기다릴 수도, 견뎌내기도 힘들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잡고 싶다. 

수건을 깔고 앉아 글 쓰는 화장실일지라도, 그 시간마저 들쑥날쑥하더라도. 난 붙잡고 싶다. 나를 잃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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