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다녀온 주말 아침.(둘째가 응급실을 갔다. 똥 때문이었다#1 참조)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변비를 검색했다. 영상 8개가 주르륵 나열된다. 무얼 볼까. 리모컨 위아래 버튼을 누르다가 ‘나는 몸신이다’에 700원을 결제했다. 방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께도 알렸다. “어머니! 변비 관련 프로그램 같이 보지 않으실래요?” 어머니와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았다. 드라마 클라이맥스를 보듯 우리의 집중력은 최고다. 나는 헐헐거렸고, 어머니는 웬일이니를 연발했다. 프로그램에서는 변비에 좋은 사과, 배도 체질에 맞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과와 배는 차가운 체질에 맞으며, 열이 많은 체질이 먹을 경우 가스가 많이 찬다는 거다. 텔레비전 속 사회자는 “열이 많은 사람에게 비법은 바로!!!” 비장한 미소를 지은 의사가 이어 외쳤다. “포드맵이 낮은 음식을 섭취하라!!!”
방송에서는 포드맵이 적고 변비에 효과적인 음식물을 정리해서 표로 보여주었다. 난 핸드폰을 냅다 꺼냈다. 찰칵.
그날 당장 사과와 배를 중단하고 오이, 청포도, 바나나, 키위, 딸기를 갈아 해장 주스를 만들었다. 세윤이는 먹는 듯하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팔을 젓는다. “좀 더 먹어봐~너 좋으라고 하는 거야.” 16개월 아기가 무얼 알까. 며칠 시도해보지만 세윤이는 해장 주스가 든 빨대컵을 던지기에 이른다. 포기다. 아이에게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해줘야 할까. 마침 식탁 위에 있던 한약이 보였다. ‘맞다! 한의원에 상담할 생각을 왜 못했지?!’
“어머니! oo 한의원 원장이에요. 상담 원하셨다고요?! 세윤이가 응급실까지 갔다고 간호사한테 들었어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한의사는 열렬히 격려해주었다. 통화하면서도 공감능력이 참 좋은 의사네라고 생각했다. 한의사에게 텔레비전에서 봤던 걸 설명한 후 질문했다. “세윤이 체질에 해장 주스가 도움이 되긴 할까요?” 도움은 될 거란다. 뭔가 어정쩡한 대답. 난 ‘도움이 되니 열심히 먹이세요.’와 같은 명확한 답변을 원했다. 만족스럽지 않아 다시 한번 물었지만 해장 주스보단 귤피차(귤껍질 차)를 추천했다. 한약에도 귤껍질이 다량 들어갔으며 세윤이 체질엔 귤껍질이 더 도움이 된단다. 거기다가 세 가지 혈 자리도 알려주었다. 중완혈, 천추혈, 대횡혈. 수시로 눌러주란다. 통화가 끝난 후 포털 사이트에 혈자리와 귤껍질 말리는 법을 검색했다. 그날 저녁부터 귤을 부지런히 먹으며 귤껍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식이요법과 한약에 이어 귤피차까지 합세했다. 어느덧 응급실에 갔다 온 지 3일째. 둘째는 울면서 겨우겨우 변을 쌌다. 그래도 3일이면 어디야. 다행이라 여겼다. 그 후 응가 소식은 5일이 지나도 없었다. 6일째부터 하루 종일 징징 모드다. 관장은 피하고 싶어 ‘장쾌락’을 이틀이나 먹였다. 어랏. 반응이 없다. 세윤이 배는 여전히 빵빵하다. 변을 못 본 지 8일째 되던 날 끝내 ‘베베락스’로 관장시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이가 발만 동동거리며 울더니 지리다 만다. 뭐야. 관장도 안 먹혀? 다음 날 아침에도 응가 소식은 없었다. 난 선택해야 했다. 검색창에 ‘부천 중동 소아과 아이 변비’라 입력했다. 많은 병원이 뜬다. 병원마다 부천 맘 카페에 접속해 리뷰를 살폈다. 그러다 중동에서 꽤 유명하다는 소아과에 관심이 갔다.
다음 날 아침 비장하면서도 애타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소아과는 명성과 달리 시설이 허름하고도 촌스러워 사뭇 놀랬다. 검정, 주황, 연두색 소파는 불협화음을 이뤘고, 한쪽은 갈색 가벽. 그 옆 벽은 도배를 했는데, 기묘한 알파벳 무늬 벽지. 이 분위기 뭐지. 마치 오래된 보건소 같달까. 그럼에도 아홉 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10시도 안됐는데 말이다. 유명하긴 한가 보네.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세윤이는 울기 시작했다. 아득바득. 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아이 덕에 간신히 접수했다. “최세윤 어머니!” 간호사가 호명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
여의사는 우릴 반갑게 맞았다. 그동안의 일을 하소연하듯 의사에게 쏟아냈다.
“정말 힘드셨겠어요. 음... 세윤이 같은 경우, 식이요법은 무리해서 챙기지 마세요. 식이요법이 통했다면 애초에 해결됐겠죠. 약으로 치료해야 될 거 같아요. 아이들 변비의 반이상은 심리적인 요인이 커요. 아이들은 변 보기 무서워서 참고, 변이 쌓여 배변 욕구가 저하되고, 장내에서 변이 굳어 배변 때 통증과 항문의 찢어지다 보니 배변 기피가 반복되는 거예요. 변 보는 게 힘들지 않다는 걸 인지 시켜줘야 해요. 그래서 변을 묽게 해주는 약을 우선 처방할 생각이에요.”
'식이요법은 무리해서 챙기지 마세요.'란 말이 왜 위로가 되지. 근 1년간 식이요법을 고민하고, 만들고, 먹이던 고생을 충분히 아니까 이젠 그만해도 된다고 어깨를 토닥이는 거 같았다. 의사는 9일째 변을 못 보는 세윤이를 관장시키고 아이 변 상태를 살핀 후 변비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그날부터 ‘듀파락-이지시럽’을 6ml씩 아침, 저녁으로 먹이기 시작했다. 부천 성모병원에서는 '마그밀정, 갈타제 산, 포리부틴 드라이시럽 or 듀파락-이지시럽'을 주던데 여긴 하나만 처방했다. 의아했지만 의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병원을 다녀온 당일부터 약효과가 나타났다. 세윤이는 한번 지리고, 몇 시간 후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변을 두 번이나 봤다. 오늘 변을 봤는데 또 보다니. 둘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효과가 있긴 있네라며 안도했다. 그 후 4일째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5일째 되는 날 보채며 변을 봤다.
다시 소아과 방문일. 약 복용 5일 후 힘들게 변을 봤다고 말했다. 의사는 약 용량을 10ml로 올려보자고 했다. 세윤이 변비치료의 경우 반년 정도는 기간을 잡아야 할거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절대 약을 중단하지 말고, 하루 한 번이라도 복용하는 게 중요하며, 끈기 있게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세윤이는 그 후 2~3일에 한번 변을 봤다. 우리 집은 경사 모드다. 변을 볼 때마다 어머니에게 알렸다. 나보다 더 염려하시므로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어머니는 세윤이 응가 소식에 이보다 신나는 소식이 어딨냐며 좋아하셨다.
그렇지만 아직인가 보다. 잘 쌀 때도 있지만 6~7일 동안 못싸서 힘들어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번엔 좋아질 거란 확신은 든다. 치료를 시작한 지 겨우 3주지만 전보단 차이가 나긴 하니까.
사실 종합병원에서 두 달간의 변비치료는 변비약을 불신시켰고, 병원을 옮겨도 비슷할 거라 여기게 했다. 그래서 내 힘으로 해보겠다고 반년 간 끙끙댔던 건지도 모른다. 그때 내 선택은 옳았을까. 식이요법으로 해결했다는 인터넷의 수많은 글을 보며 생긴 고집이었을까? 만약 이곳 소아과로 옮겨서 바로 치료를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할수록 가슴만 답답해진다. 후회한다고 바뀌는 건 없음을 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부디 이곳에서의 변비 치료가 마지막 수단이 되길 바라며 열심히 다니는 것과, 반년 후엔 우리 가족 모두가 아이 변비로 마음고생하지 않길 두 손 모아 바라고 바라는 것뿐이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