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일어나질 못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bounce patrol'의 <Baby Shark Finger Family>를 틀었다. 눈만 꿈벅 거리며 화면만 응시한다. 보통 때라면 두 손을 휘젓고 방방 뛰면서 춤을 췄을 아이다.
잠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듯 아무리 등을 어루만지고,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불러봐도 외려 내 품에 안겨 눈만 감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과 이틀 전에 위장염으로 입원했었기 때문이다.
일단 뭐라도 먹이기로 했다. 밥에 김을 싸서 주자 두어 개 먹더니 물을 달랬다. 두 컵이나 벌컥벌컥 마신 후 20분도 안돼서 다시 한 컵을 마셨다. 그리곤 안방으로 가서 눕더니 그대로 잠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깨난 지 한 시간도 안돼서 다시 잠들다니!'
여지껏 없었던 일이다. 불안했으나 깨우지 않기로 했다. 자고 나면 나아지길 바랬으니까. 50분 후 세윤이는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 내 품에 안기더니 눈을 감는다. 드문드문 눈은 떴으나, 초점은 멍했고, 축 늘어졌다.
"세윤아! 세윤아! 정신 좀 차려봐! 최세윤! 일어나 봐!!"
더는 안될 거 같았다. 손이 떨렸다. 아이를 그대로 눕힌 후 기저귀 가방을 꺼내와 기저귀, 물티슈, 젤리, 빨대컵을 넣었다. 혹시 모르니 여벌 옷과 핸드폰 충전기까지 챙겼다. 나부터 옷을 갈아 입고 세윤이에게 옷을 입혔다. 부천 성모 병원에 들어서니 직원이 열체크를 했다. 그리고 키오스크에서 간단히 문진표를 체크한 후 아이 것과 내 것 두 장의 출입증을 발급받았다. 소아과 외래는 한산했다. 덕분에 당일 접수였음에도 30분도 안돼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은 아이 상태를 보더니 말했다.
"저번처럼 저혈당이 심하게 왔을 수도 있어요. 일단 수액을 2시간 맞으면서 아이 상태를 보죠. 아이들은 웬만하면 수액 맞고 컨디션이 돌아오거든요. 근데 맞고도 여전하면 입원해야 할 수도 있어요."
대기실로 나오자 간호사는 수납 후 주사실로 가라고 했다. 다행히 주사실은 멀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들어서니 간호사가 자리를 안내했고, 세윤이는 수액을 맞으며 잠들었다. 1시간 반 동안 세 차례나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기운은 여전히 없었다. 간호사가 와서 물었다.
"어때요?"
"아뇨. 여전한데요?!"
얼마 후 다시 돌아온 간호사는 입을 뗐다.
"어머님만 소아과에 가셔서 잠깐 설명 듣고 오실래요? 아이는 저희가 보고 있을게요."
오후 4시 45분. 간호사는 코로나 검사가 곧 마감이라며 부산스러웠다. 코로나 검사를 지금 해야 저녁 8시에 결과가 나와서 입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내일 아침 8시까지 응급실에서 대기해야 한다고.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는 장소가 아이와 내가 달랐단 것이고, 무엇보다 15분 안에 모든 걸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손으론 아이를 안고 남은 손으로 뽈대를 민채 2층 수납처를 거쳐 1층 외부 검사실과 선별 진료소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간호사들은 연신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부탁했다. 서로가 우왕좌왕할 때 수간호사가 단호히 정리했다.
"어머니! 저희 신속해야 해요! 검사 마감이 5시거든요! 일단 OOO 간호사!! 어머니 카드 받아서 수납하고 오고! 어머니는 저랑 같이 1층 선별 진료소랑 외부 검사실에 간 후 응급실로 가자고요! 저희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수간호사가 옆에서 뽈대를 밀어주었음에도 원내의 인파를 피하며 나가자니 속도가 더뎠다. 2층에서 1층. 그리고 밖에 있는 선별 진료소까지 가려니 팔이 찢어질 거 같았다. 걷다 뛰다 하며 선별 진료소 앞에 도착했다. 4시 54분. 선별 진료소에서의 검사가 끝난 후 서둘러 외부 검사실로 이동했다. 시간은 4시 59분이었다.
우린 마침내 응급실로 들어섰다. 수간호사는 치료 잘 받고 가라고 인사했다. 나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너무 고마워서 부천 성모 병원 홈페이지 고객 사연에 감사의 글을 써서 널리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수간호사쌤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기 싫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는 세윤이를 보며 또 왔냐고 인사했다. 피검사를 하는데도 아이는 축 늘어져 울지도 못했다. 8시 반 '코로나 음성'.
짐을 챙겨 10층 소아과 병동으로 향했다. 퇴근 후 와있던 신랑은 짐만 내려놓고 바로 나갔다. 앞으로 4박 5일 동안 아이와 둘이서 실랑이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3인실로 결정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병동 간호사는 누누이 강조했다.
"입원 중엔 소아과 병동에서 벗어나면 안돼요! 그리고 다른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어요! 만약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저녁 6시 전엔 원무과 직원이 1층에서 받아서 병실로 갖다 주실 거고, 밤 9시가 넘을 땐 10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분에게 물건 받아 보실 수 있어요."
첫날이야 아이가 기운이 없어서 괜찮았다지만 컨디션이 돌아온 이튿날부턴 전쟁이었다. 아이는 수액 라인을 계속 당겼고, 링거 손목 보호대(?)를 빼려 했으며, 안 빠지자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둘째 날은 수액 라인을 적응하느라 예민해진 아이의 짜증과 보챔을 받아내느라 하루가 길었다.
셋째 날부터 아이는 나가고 싶어 했다. 뽈대를 밀며 대략 150m밖에 안 되는 복도를 20여분 걸었다. 오전에 두 어번 걷고 저녁에 두어 번 걸었다. 마지막 복도 산책 때는 소아과 격리 문 밖으로 나가자며 자동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문을 열고 휴게실로 나갔다. 의자는 한 곳에 모여 있었고, '사용금지'라는 종이가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반짝거리는 자판기의 버튼을 보자 아이는 폴짝폴짝 뛰었고, 창밖에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환호했다. 그러다가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냅따 달렸고 내게 잡혀 울었다.
3일 동안 신랑과 나는 밤 10시 10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물품만 받고 5분 정도 얘기할 뿐이었다. 더 이야기하려 해도 간호사가 눈치를 줬다. 신랑과 헤어지고 병동 스크린도어에 바코드 팔찌를 갖다 댈 때면 혼자 전쟁터로 나가는 기분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은 아이에게 핸드폰을 원 없이 보여줬다. 나간다고 하는 게, 심심하다고 칭얼대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원 생활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번 입원 생활은 역대 최고였다. 코로나로 제한이 많고 제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산책할 수도 없었고, 면회도 안됐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병실 침대에선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뭐라고 안 했다. (대신 커튼을 쳤고, 주치의나 간호사 올 때는 다시 꼈다.) 만약 병실에서조차 마스크를 내내 껴야 했다면 곱절로 힘들었을 테다.
퇴원 날이 밝았다. 나오기 전 병동을 둘러봤다. 코로나 중에도 아픈 아이를 지켜내고자 악착같이 분투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병과도 싸웠고 코로나와도 싸웠다. 먼저 퇴원하는 게 내심 미안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윤이는 냅따 탄 후 눈치를 살폈다. 엄마가 제재를 안 하자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병원 1층은 사람들로 복작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마 할 거 없이 다들 마스크를 꼈고 다들 어딘가로 분주히 움직였다. 병원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몸의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그날따라 하늘은 너무도 화창했다.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