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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혼자가 된 거야. 다들 어디 있는 거니?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는 걸 지켜본 엄마들에게 ‘잊혀짐’ 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잊혀짐’이란 단어는 마들만이 아니라더라도  인간을 쇠잔하게 만든다.


마치 유리에 금이 가듯 따뜻했던 심장에도 금이 가며 한 인간이 언제  박살 날지 모르는 시간의 유한함을 짊어지게 하고, 쓸쓸함의 깊이에 따라 한 인간의 존재가 언제 깨질지가  결정되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엔 점점 갈라져 틈이 난 사이사이로 찬 바람이 슝슝 지나다 마음을 애리는  슬픔으로 눈물은 흘러 삶을 뿌옇게 보게 될지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엄마란 존재가, 세상에 한 사람의 존재가 뿌옇고도 희미해진다는 건, 존재 이유가 희미해지는 것과 같다.


장성한 자식들은 그들 앞에 놓인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기 바쁘고, 먼발치서 바라보는 엄마는 자식이 안쓰러워 걱정이 된다.
그런 자식들에게 나를 챙겨달라고 말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행동이기에, 그녀들은 가슴 깊숙이 외로움을 삼키며, 쓰디쓴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겨울 저녁에 일이다.

첫째의 학원차가 집으로 도착할 시간이 되어,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우리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 안에는 불안한 듯 손잡이를 지그시 잡으며 눈만 멀뚱멀뚱 거리는 아흔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타고 계셨다.

나를 보자 초조하고도 반갑다는 듯 말을 꺼내셨다.     



“우리 집이 기억이 안 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경위를 알려주시려 내게 말씀하셨지만 많이 놀라셨는지 횡설수설하시어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할머니 집이 몇 층인지 기억 안 나 시는 거예요? 아드님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시죠?”     


당황하셔서 눈만 껌벅껌벅거리셨다.    

 

“저희 건물에 사시는 건 맞으시죠?”     


“응.... 난 그냥 엘리베이터만 탔을 뿐이야...”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할머니가 신고 계신 곰돌이 방한 실내화.

그 실내화처럼 낯선 공간에 투욱 던져진 할머니가 슬퍼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듯 할머니 표정도 내려앉았다.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      


“할머니, 집 찾아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선 제가 딸아이 학원차가 도착할 시간이라 마중 나가던 길이었거든요. 잠깐만 요 앞에 갔다 올게요. 추우니까 건물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불안하신 할머니는


“다시 오는 거지?”     


“아이만 데리고 올게요. 추우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응”


불안한 눈빛으로 내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셨다.


학원차를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잘 계신지 걱정되어 빌라를 바라보는데, 1층 복도에는 불이 꺼져있었고, 어둠 사이로 뒷짐을 진 왜소한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어두컴컴한 공기에 둘러싸인 할머니를 바라보니, 나이 들어 사회에서 소외되어버린 작디작은 한 인간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여 마음이 아려왔다.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갔다.

우선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어디 사시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다 어렴풋이 아드님과 할머니가 손을 잡고 나가시는 걸 마주쳤던 게 기억이 났다.     


“할머니 혹시 아드님이 키가 작으시고 안경 쓰신 분이신가요?”     


눈만 껌벅껌벅거리시다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보였다. 더 물어보면 할머님이 우실 거 같아서 질문은 그만하고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제 기억에는 4층에 사시는 거 같아요. 제가 예전에 아드님과 할머니가 함께 나오시는 걸 봤던 기억이 있어요. 우선 4층으로 올라가 봐요.”     


함께 4층으로 올라왔고, 내가 예측한 집에 초인종을 눌렀지만, 집안은 적막했다.     


“할머니 집에 혼자 계셨어요?”     


“응...”     


“집에 아무도 안 계시네요... 혹시 비밀번호 기억나세요?"


"......"


할머니는 주눅 들어 있었다.


"어쩌나.... 그럼 제가 신랑한테 전화해서 아드님 전화번호 알아볼게요.”     


다행히 신랑이 동대표였기에 빌라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신랑과 통화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신랑이 알아보겠다고 했다.     


“할머니 연락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할 거 같아요.”     


 “미안해요... 정말......(눈물을 글썽거리시며, 옷소매로 닦으셨다.)     


곧 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집은 할머니랑 같이 살지 않는데, 내 생각에는 그 앞집 같은데? 아직 일하고 계신지 부재중이야... 연락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아!! 할머니 혹시 존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 00”     


“여보!! 박 00 할머니 시래”     


“응 알겠어! ”     


시간이 지체될 거 같아서 빌라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기엔 할머니도 힘드시고, 첫째는 언제 우리 집에 가냐고 물어보고, 내 품에 안겨 있는 둘째로 인해 어깨도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으니,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기다리실래요?”   

  

할머니는 머뭇거리셨다.     


“할머니 여기서 계속 기다리시기엔 힘드시잖아요. 저희 집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연락이 곧 올 거예요”

     

“미안해서 어쩌나.... 미안해요 정말....”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서 올라가요”


할머니의 큰 눈망울은 더욱 촉촉해졌다.     


“속상하네... 정말......”      


작디작게 혼잣말을 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우리 집으로 들어와, 얼마 후 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까 말했던 그 집이 맞대. 아드님이 당신 핸드폰으로 곧 연락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5분 후 아드님에게 연락이 왔다.


“사모님 너무 고맙습니다. 어머님이 잠깐 나오셨나 보네요. 번거롭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은혜는 진짜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근데 어쩌죠. 제가 지금 퇴근 중이라 집에 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요.”


“퇴근이 오래 걸리시 나요? 그러면 할머니 저희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테니, 있다 퇴근 후 저희 집으로 오시면 될 거 같아요.”     


“정말 죄송하지만, 어머님이 집에 계시는 걸 편해하실 거 같아요. 제가 집 비밀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어머니를 집에 모셔주실래요? 정말 죄송해요. 집 비밀번호는 000000예요.”     


“괜찮아요. 어차피 같은 건물인데요. 어려울 것도 없어요. 그렇게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고 할머니를 모시고 4층으로 내려가 집 현관문을 열어드렸다.

현관에서 집안을 얼핏 보게 되었는데, 할머니 혼자 덩그러니 집에 계셨던 게 상상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여기서 혼자 하루 종일 계셨겠구나’     


“할머니 여기서 기다리시면 아드님이 오신대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될 거 같아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시며) 여기가 우리 집이래요? 여기서 기다리면 된대요? 아니면 요기 복도에서 기다릴까?”     


“여기가 할머니 집인 거 같은데, 아니에요?”   

  

“여기가 우리 집 맞아?”


하도 두리번거리시며 낯설어하시길래, 불안해졌다.

할머니도 불안하신지 집안으로 들어가시지 못했기에, 아드님과 통화시켜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아드님과 다시 통화를 했고 할머니가 불안해하신다고 설명드린 후 할머니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아~아들.. 응.. 응... 알겠어... 기다리면 오는 거지?”        

  

통화가 끝나신 할머니는 미소를 머금으며, 너무 고맙다고 연신 말씀하셨고, 눈에선 눈물이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에요. 집을 찾아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드님 곧 실 테니 집에서 편히 쉬고 계세요 ”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올라오내 마음이 아파왔다.

'아드님이 오실 때까지 또 혼자 계시겠구나....'


문득,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도 할머니 나이가 되면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본능적으로 마음이 따가워졌다.


'할머니처럼 세상에서 점점 잊히며 소외되고 말겠지?

만약 할머니처럼 기억력이 온전치 못하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예전 엄마와의 일이 기억이 난다.

엄마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엄마는 우체국 앞에 잠깐 차를 세우곤 볼일이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분주하게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엄마는 나왔고,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내게 말을 했다.


"치매 관련 보험 때문에 잠깐 갔다 온 거야."


"응? 엄마 치매 관련 보험 든 거야?"


"들어야지! 엄마가 나이 먹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치매 걸려서 자식들한테 짐이 될 순 없잖아."


엄마는 지나가는 일처럼 덤덤하게 말을 했다.

그 순간 내 가슴은 미어지게 아파왔고,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내가 울면, 엄마 마음은 어떻겠어.....'


목구멍이 뜨겁게 콕콕 쑤셔댔다.


그때의 기억과 할머니의 모습이 디졸브 되며 하나가 되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본인만의 울타리를 미리 지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밖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나하나 덤덤히 준비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내 마음을 찢고 또 찢었다.


나이가 들면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식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혼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삼키면서...다들 그렇게... 


'인생의 황혼기가 어쩜 이리도 서글플까?

대부분의 부모들이 피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인 건가?'


세상에 태어날 땐 보듬어 주는 주위 사람들이 있지만, 나이가 들 수록 한 두 명씩 빠져나가 끝내 혼자가 되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이끌려 본의 아니게 혼자가 되어 고독을 삼키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심장을 너덜거리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결책은 없다. 만약 남편이 살아 있다면 쓸쓸함은 배로 줄어들겠지만, 만약 혼자 덩그러니 삶을 마주하게 된다면 바쁜 자식들에게 기대기도 수치스러울 것이다.


이게 바뀌지 않는 삶의 흐름이고, 언젠가 다들 만나게 될 일이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덩그러니 집에 갇혀 세상에 소외된 채 아들이 올 때까지 쓸쓸하고도 외롭게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사시고, 엄마는 만일을 대비해 하나하나 차근차근 예방책을 짓고 계시는 거처럼...


누구나 만나게 될 미래....

슬프지만, 이게 현실....


나를 위해, 자식을 위해, 모두를 위해 짐이 되지 않고, 혼자서도 살아갈 있도록....

미래의 나도, 우리 엄마도,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도 미리미리 노후를 위한 예방 울타리를 지어 나간다.


인생의 황혼기가 서글퍼지지 않도록 말이다.


빛을 발하며 태어났던 한 생명의 인생이 그렇게 피었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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